한국일보

우린 다둥이 가족 “집안에 행복이 뛰어다녀요”

2006-02-1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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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다둥이 가족 “집안에 행복이 뛰어다녀요”

지난해 12월 빌리·로잘린 전 부부의 막내아들 조슈아 돌 때 찍은 사진. 사진 왼쪽부터 혜나, 조슈아, 그레이시, 새라, 베터니 양.

우린 다둥이 가족 “집안에 행복이 뛰어다녀요”

▲여섯 식구가 모여서 가족사진을 찍은 적이 없다는 이철준·은실씨 부부가 한자리에 모여 가족사진을 찍었다. 사진은 왼쪽부터 민지, 희종, 혜종, 민종 군. <진천규 기자>

5세·3세 둘에 쌍둥이 출산 육아에 지쳐 잦은 부부싸움
남편의 도움·신앙으로 극복 예쁘고 잘 자라줘 이젠 감사

자식은 부모의 마음 그릇 크기만큼 준다고 했던가. 아마도 그만큼 자식 키우는 것이 자기수양의 다름 아니기 때문에 나온 말일 것이다. 좀 산다는 국가마다 저출산 현상에 정부가 팔 걷어 붙이고 다산정책을 밀어 붙일 만큼 외동딸·아들이 대세인 요즘, 자녀 넷, 다섯도 적다며 ‘더 낳아볼까’하고 고민하는 이들이 있다면 어떨까. 아이들이 좋아, 너무나 큰 축복이어서 그 맛에 살아간다는 1.5세, 2세 젊은 한인 부부들이 주변에서 심심찮게 눈에 띈다. ‘힘닿는 데까지 낳다보니 여기까지 온 것뿐’이라며 주변의 특별한 시선에 손사래를 치지만 아이들과의 전쟁(?)을 통해 세상사는 이치를 배워간다며 ‘자녀가 스승’이라는 공통의 교과서를 들이민다. 형제의 소중함을, 사람 부대끼며 사는 정을 자녀들에게 나눠주고 싶다는 젊은 부부들의 다둥이 키우기 24시간을 들여다봤다.

4남매 키우는 이철준·은실 부부


“어휴,말 마세요. 쌍둥이 둘 낳았을 때 위로 민종이가 다섯 살, 민지가 세 살이었어요. 갓난쟁이 둘에 자기 앞가림도 힘든 두 아이를 한꺼번에 키운다는게… 말이 쉽지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르죠. 하루에도 수없이 주저앉아 울었어요. 왜 이러고 사나 싶어서요.”
아이들이 많아서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4남매의 엄마 은실(35)씨는 기다렸다는 듯 폭포수처럼 열변을 쏟아냈다. 그 말이 하도 뜨겁고 절절해 듣는 순간 잠깐 데일 뻔할 정도였다.
쌍둥이 둘을 키울 때는 반년간 거의 하루 2시간 이상 잠을 자본적 없다는 은실씨는 그때 남편과도 가장 많이 싸웠단다. 신앙의 힘이 아니었다면 정말 이혼하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두 부부 모두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아 때문에 지칠 대로 지친 시간이었다.
“그래서 지금 너무 미안해요. 그때 아이들 건사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버거워 아이들 예쁘다, 이게 축복이다 하며 감사할 여력이 없었어요. 이제 와서 한숨 돌리니 그때 책임감만으로 아이들을 돌본 게 죄스러워 미칠 지경이에요. 아이들 크고 나니 이제서야 아이들 예쁜 줄, 감사한 줄 알아요. 지금요?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 정말 눈에 넣어도 안 아프죠”
20대 중반에 유학오자 얼마 안돼 남편 이철준(40)씨를 만나 한 달만에 결혼을 한 은실씨는 허니문 베이비인 민종(9)군을 필두로 2년 뒤 민지(7)양, 또 3년 뒤엔 희종·혜종(4) 이란성 쌍둥이를 낳아 4남매의 엄마가 됐다.
“같이 유학 온 친구가 박사학위 받고 교수되는 것을 보면서 남편한테 투정하죠. 난 지금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요. 그럴 때마다 남편이 이렇게 미래의 기둥이 될 아이들 키우는게 훨씬 더 보람있고 값진 일이라고 격려해줍니다. 물론 남편이 가사 일이며 육아며 많이 도와줬으니까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말할 것도 없죠.”다둥이 부부의 공통점이다. 부부 금실이 말할 것 없이 좋은데다 육아며 가사며 남편의 손길이 안 뻗치는 곳이 없다는 점 말이다. 아마 그래서 이들은 “한 명쯤 더 있어도 좋지 않을까”하는 남들 보기엔 위험천만(?)한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다둥이네의 가장 큰 장점은 자립심

다들 묻는단다. 도대체 그 많은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느냐고. 더욱이 민종이네는 특별히 일을 도와주는 사람 없이 집안 살림이며, 아이들 뒷바라지며 모두 엄마 은실씨 혼자서 감당한다.
“제가 다 한다면 애들 못 키우죠. 누가 얘기한 것도, 강요한 것도 아닌데 아이들 혼자서 너무 잘 해요. 오히려 이젠 제가 할 일이 너무 없어서 서운할 정도죠.”
아침에 누가 깨우지 않아도 아홉 살 민종이부터 네 살 희종이, 혜종이까지 척척 잘도 일어난다. 아침식사 역시 쌍둥이 형제가 알아서 해결한다. 엄마가 빵과 잼은 어느 캐비넷에, 시리얼은 어디에 있는지 이미 알려줬기 때문에 먹고 싶은 메뉴로 쌍둥이가 알아서 식탁으로 가져온다. 식빵도 자기들이 알아서 토스터기에 넣고 잼도 발라먹는단다.
인터뷰가 있던 일요일 오후 교회 식당에서도 쌍둥이는 엄마가 챙겨주지 않아도 밥과 김치를 가져와 김치를 물에다 씻어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웠다. 그뿐 아니다. 빨래도 엄마가 빨아서 한곳에 개어놓으면 아이들이 알아서 자기 옷을 찾아 서랍장에 수납한단다.
또 요즘 아이들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 역시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민지는 학교에서 상으로 받은 초콜릿 한쪽도 꼭 남겼다 두 동생들을 챙긴다.
심지어 쌍둥이 형제도 어른들이 주는 사탕이며 과자 역시 형과 누나 줘야 한다면 꼭 2개씩 더 챙겨 온다고. “그러다보니 민종이나 민지가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엄마들이 너무 좋아해요. 친구뿐 아니라 친구 동생들하고도 너무 잘 놀고 잘 보살펴 준다고요. 동생들이 많아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또래 아이들보다 의젓하고 배려심이 많은 것이 부모입장에선 대견하죠.”
어디서도 배울 수 없는 사회성을 이들은 형제를 통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통해 자연스럽게 익혀가고 있었다.  
◇좋은일만 있진 않아요…이럴 땐 ‘정말 난감’

아이들을 여럿 키우다 보면 크고 작은 해프닝이 끊이질 않는다.
식당에 가서 외식이라도 할라치면 미국인들도 흘끔흘끔 쳐다보며 귓속말을 나눈다.
“저 아이들이 모두 저 사람들 친자식일까?”하는 질문에서부터 심지어 맞다, 아니다로 내기를 거는 사람들까지. 결국 식당에서 나가면서 아예 대놓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단다.
이처럼 주위 시선도 시선이지만 역시 생활 속에 불편도 있게 마련. 온 가족이 한번 ‘출동’할라치면 소형차론 어림도 없다. 그래서 쌍둥이를 낳고 이들 부부가 제일 먼저 한 것도 미니 밴을 마련한 것이다.
이런 작은 불편이야 감수한다고 해도 형제들이 많다보니 자녀들 하나 하나에 일일이 맘을 써주지 못하는 것도 부모에겐 가장 가슴아프다.
민종이는 민지가 태어나고 나서 한동안 잘하던 말을 더듬어 은실씨의 가슴을 졸이게 했고, 쌍둥이가 태어나서는 그래도 3년 동안 막내사랑을 독차지했던 민지에게 신경을 써주질 못해 아직도 민지가 어리광을 피울 때면 조금 신경이 쓰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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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학교에서 열린 할로윈 파티때 은실씨가 쌍둥이 희종·혜종군, 둘째 민지양과 함께 활
짝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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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준·은실씨 부부의 4남매가 집 근처 파크에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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