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숙희 기자의 주방일기

2006-02-15 (수)
크게 작게
퍼주는 식당

지난 주말 브런치를 먹으러 멀리 로미타까지 다녀왔다. 그곳에서 ‘핫 앤 탓’(Hot n Tot)이라는 미국식당을 경영하는 김영자씨 초대로 세 식구가 나들이한 것이다.
얼마전 골프선수 테드 오를 사위로 맞이한 김영자씨는 최근 헌팅턴 비치의 토다이도 인수하여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식당 분야의 전문가로, 핫 앤 탓은 2년전 김씨 부부가 인수한 후 더 장사가 잘 돼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한다. 1946년 문을 연 동네 명소이자 터줏대감 식당인데 미국인이 운영할 때보다 오히려 더 성업중이라는 것이다.
토요일 오전 11시, 핫 앤 탓은 미국인 손님들로 바글바글하였고 우리도 얼마간 기다린 후에야 자리로 안내되었다. 살사를 곁들여 먹는 오믈렛이 특별히 맛있는 곳이라 아들과 나는 오믈렛을, 남편은 햄 스테이크를 시켰는데 음식이 나왔을 때 우리는 모두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양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다 먹을 수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오믈렛과 감자도 엄청나게 많았지만 햄 스테이크는 1.5cm 두께의 햄이 통째로 커다란 디너접시에 하나 가득 나왔기 때문에 도대체 이것이 브렉퍼스트인지 디너 메뉴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결국 남편은 햄을 반도 먹지 못했고 나도 감자를 고스란히 남겼으며 각자 몫으로 나온 토스트 접시에는 아무도 손을 대지 못했다. 그 음식 가격은 총 25달러도 안 됐다.
우리 테이블로 온 김씨에게 음식이 너무 많다고, 이렇게 많이 퍼주면 뭐가 남느냐고 묻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퍼주니까 손님들이 오지요. 아무리 퍼줘도 음식은 재료값이 워낙 싸서 절대 손해 나지 않아요. 잼이며 설탕이며 테이블에 넉넉히 쌓아두는 것도 그렇습니다. 백에 몰래 집어넣고 가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거 몰라서 그냥 쌓아놓겠어요? 그 재미에 우리 집 오는건데, 그런 거 인색하게 하면 안 되죠”
월요일 저녁엔 4.99달러에 ‘무제한 스파게티 디너‘(All you can eat Spaghetti)를 서브하는데 동네 사람들이 다 몰려나오는지 북새통을 이룬단다. 스파게티를 실컷 먹고도 집에 싸가는 손님들, 웬만한 업주라면 눈을 흘길 법도 하건만 김씨는 ‘얼마나 귀엽냐’며 두말없이 싸준다고 했다.
동서플라자 대표 박혜경씨도 전에 똑같은 말을 했다. 30여년전 지금 숯불집 자리에 ‘국일관’이란 한식당을 차렸던 박씨는 무조건 퍼주면서 비즈니스를 일궜다고 했다.
“밥도 할 줄 모르면서 식당을 열어놨으니 어떡해요. 매일 새벽시장에 가서 신선한 생선을 사다가 생선구이 메뉴를 잔뜩 만들었지요. 그리고는 무조건 많이 주고 친절하게 대접했습니다. 밥은 금방 지은 것으로 냈고, 손님이 더 달라고 하기 전에 푸짐하게 갖다주는 것, 그 두가지를 철저하게 했습니다. 음식 재료가 얼마나 싼데, 남으면 뭐해요? 밥 남으면 누룽지를 만들어 한 대접씩 퍼주고, 음식 남는다 싶으면 교회 성가대, 구역식구들 불러다가 메뉴에 없는 음식까지 만들어서 참 많이도 해 먹였습니다”
그렇게 퍼주니 파킹장 하나 없는 식당에 손님들이 줄을 서더라고 했다. 3년 운영하다가 한창 매상 올랐을 때 식당을 판 박씨는 그 돈을 밑돈으로 옷가게부터 시작해 타고난 비즈니스 감각으로 동서플라자를 세우고 호텔까지 경영하는 업계 큰손이 되었다.
애너하임에서 ‘킹 뽀요’ 통닭집을 운영하는 이배근씨 부부도 퍼주는 장사로는 둘째가라면 서럽다. 닭도 물론 푸짐하지만 사이드 음식인 살사, 토티야, 볶음밥 같은 것을 손님이 달라는 대로 퍼주는 것이다. 햄버거 샵과 샌드위치 샵만 25년 이상 운영해온 이씨 부부는 “먹는 장사는 인심이 후해야 한다”는 철학이 몸에 배어있다. “손님 보기에 주인이 가난하고 쩨쩨하면 장사 안 된다”고 단언하는 그는 그렇게 베풀다보면 공짜는 없더라고 전했다.
음식 장사, 즉 식당 비즈니스는 퍼주면 퍼줄수록 잘 된다고들 많은 경험자들이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식당업주들이 그렇게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많은 업주들이 음식이 아까워서라기보다 욕심 부리는 손님이 얄미워서 인색하게 구는 모습을 종종 보는데, 욕심 많은 손님이 ‘귀여워’ 보이는 업주와 ‘얄미워’보이는 업주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장사 잘 하는 법을 알고 모르고의 차이가 아니라, 사람 그릇의 차이, 통의 차이, 비즈니스 감각의 차이다. 그러니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데서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의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