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6-02-1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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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 돌아가라


가족들이 모두 한자리에 둘러앉았다. 엄마도 언니도 나도 눈이 퉁퉁 부을 대로 부어있다. 집안에 제일 어른이신 삼촌이 차분하게 말씀을 하신다.
“흠… 결과가 이렇다는구나. 나 역시도 너무 놀라고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리rh 너무 가슴 아프고 슬프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사람들과 다른 것이 무엇이냐.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울지 마라. 우리가 천국의 소망이 없다면야 울고불고 가슴을 쳐도 시원치 않을텐데 우린 천국으로 다 갈 사람들이다.”
삼촌의 ‘울지 마라’라는 말씀에 벌써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진다. 삼촌이 계속 말씀을 이어가신다. “오늘 아버지하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래도 감사하게 아버진 생각하고 계시다. 아직도 몇개월의 정리할 수 있는 시간 있음에 감사하고 그동안 최선을 다해 살은 것에 감사하고, 자녀들 다 출가시킴에 감사하고… 아버진 이젠 좀 쉬어야 한다. 알지? 사람들 앞에서 눈물바람 내지 마라. 그냥 아버지가 편찮으셨을 때나 지금이나 일상에서 최선을 다해라. 너희 아버지의 바람이야. 교회에서도 일상에서도 열심히 생활해. 너희 아버지 너무 강한 사람인 거 너희들이 더 잘 알잖니. 아버지 이제부터 더 편하게 잘 모셔드려.”
승욱이를 데리고 집에 오니 아버지가 집에 누워 계신다. 아버지의 쾡 해진 얼굴을 보니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어 내 방으로 들어왔다. 지난주부터 이삿짐을 계속 싸고 있던 터라 방은 완전히 엉망진창이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어 있는 것 같아 너무 심란하다.
아무래도 이사는 내가 알아서 해야할 것 같다. 엄마도 정신이 없을텐데 나라도 바짝 정신차리고 아버질 하루라도 넓고 편한 집에서 모셔야 한다는 생각에 그리고 나쁜 생각에 휩싸이지 않으려 난 서둘러 짐을 싸기 시작했다. 짐 한 박스 싸고 눈물 한 동이 쏟고… 왜 이리 서글픈지, 왜 이리 서러운지, 왜이리 슬픈지…
옆방에서 들려오는 아버지의 기침소리가 가슴을 꽉 막는다. ‘아버지… 힘내세요. 좋은 집으로 이사가서 좀 편하게 계실 수 있게 해드릴께요.’ 밤새 이런저런 생각으로 잠을 설쳤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최선의 길은 무엇일까…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난 아침 일찍 UCLA 스피치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승욱이 스피치 선생님과 연결이 되었다. 난 “승욱이 엄마야. 아침 일찍 전화 걸어서 놀랐지?” 승욱이 스피치 선생님은 이른 아침에 나의 전화에 놀란 듯이 “승욱이가 무슨 말이라도 지난밤에 했니?”라고 물었다. 난 “아니, 너에게 할말이 있어서 전화를 걸었어. 음… 있지… 아무래도 당분간 승욱이의 스피치 교육은 잠시 중단을 해야 할 것 같아”라고 말했다.
그녀는 “왜? 무슨 일 있니? 우리 센터의 서비스가 만족스럽지 않아?”라고 물었다. 난 “전혀 아니라고,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어서 갈 수 없다고 했다.” 그녀는 완강히 지금 승욱이에게 스피치교육은 너무너무 중요한 시기라고 연신 나에게 말했다. UCLA가 너무 멀어서 그런 거라면 집 가까운 곳의 센터를 연결해보자고 했다.
난 조금 나에게 시간을 달라고 했다. 몇달만 아니 몇주만 잠시 방학을 하고 나서 다시 연락을 하겠다고 했다. 그녀는 나의 말에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듯 전화를 끊었다.
내가 지금 모든 것을 다 할 수가 없다는 결론을 지난밤에 내렸다. 지금은 그저 아버지에게 집중할 때라고 생각했다. 승욱이의 스피치 교육이 몇달 늦춰진다고 승욱이 인생이 완전히 어찌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을 했다. 나의 결정이 잘한 것인지 어쩐 것인지 분석할 시간이 없다.
아버지의 말씀대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그러면 정말 아버지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없을 것 같다. 지금은 그저 아버지에게 최선을 다해 집중하고 싶다.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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