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숙희 기자의 주방일기

2006-02-0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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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얼마전 타계한 고 백남준씨를 지금으로부터 18년전인 1988년 2월에 인터뷰한 적이 있다.
당시 샌타모니카의 도로시 골딘 갤러리에서 백남준 초대전이 열렸는데 미 서부지역에서의 첫 개인전이라 그가 참석했었다. 나는 그때 한창 설치고 돌아다니던 신참 문화부기자였다.
인터뷰를 불편해하고, 말이 어눌하고, 사진기를 들이대면 히죽 웃는 표정을 지어주는 백남준씨는 아이 같았고 ‘바보’ 같았다. 무슨 질문에든 단답형 또는 동문서답으로 말하는, 기자들이 싫어하는 유형의 그는 시끄럽고 복잡한 오프닝 와중에 나에게 인터뷰를 당하며 앉아서 졸기까지 했고, 나는 그를 깨워가며 조심스럽게 질문하느라 진땀을 뺐다.
그때 백남준 인터뷰와 예술세계에 관해 통판 2페이지 빼곡이 특집기사를 썼다. 그리고 그 신문을 뉴욕으로 부쳐 주었던가보다. 시간이 꽤 지난 후 두툼한 봉투가 날아왔다. 열어보니 내가 보냈던 신문이 구깃구깃 아무렇게나 접힌 채 들어있었고 기사 위에 붉은 색연필로 성의없이 그려진 큰 동그라미가 보였다. 기껏 공들여 쓴 기사에 낙서를 해서 되돌려 보내다니, 당황도 하고, 자존심도 상하고, 화가 나려는 순간, 빨간색 한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秀. 빼어날 ‘수’ 자였다. 아무 설명도, 편지도 없고 단지 그것뿐이니, 나 좋은 쪽으로 해석할 도리밖엔 없었다. ‘기사를 빼어나게 잘 썼다는 칭찬이구나’ 지금껏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사실 백씨를 인터뷰하기 전 나는 그에 관해 열심히 공부했다. 당시는 인터넷도 없었고, 정보가 아주 제한돼있던 시절이라 무슨 기사를 쓰려해도 자료 찾기가 매우 힘들었다. 한국이라면 신문사마다 자료실이 있고 도서관도 있으며 책방에 책도 많지만 당시 미주한인사회는 도서관은커녕 한국서점도 열악한 상태여서 전문서적은 찾기가 힘들었다.
나는 상당한 분량의 미국 잡지비평과 주요 신문기사들, 그를 소개한 각종 영문자료를 구해다가 모두 읽은 다음 인터뷰를 했는데, 그 덕에 백남준이 비디오 아티스트가 되기 전에 이미 전위음악가로서 대단한 재능을 보였고 많은 작품활동을 했었다는 이력을 심도있게 쓸 수 있었다. 그 때만 해도 한국에서는 백남준이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라는 사실만을 집중 보도했지, 그가 음악을 했었다는 사실은 알려진 적이 없었는데 백씨는 아마 그 점을 ‘빼어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바로 그 글이 쓰여진 부분에 ‘秀’가 쓰여있었으니 말이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참 재미있지 않은가? 암호같은 한문 한 글자 휘갈겨 쓴 신문지를 접어서 기자에게 다시 부쳤으니 말이다. 그 신문지를 잘 간직한다고 했는데, 지금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다.
그 얼마 후 뉴욕에 출장 갈 일이 생겨서 내가 연락했던 것 같다. 만나고 싶다고 했더니 어느 전시장에서 오프닝이 있으니 그곳으로 오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날 백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한 30분간 전시회 구경을 하다가가 돌아서 나오면서 ‘그럼 그렇지, 백남준씨가 일주일 전에 나와 한 약속을 기억이나 할게 뭐야’ 그런 생각에 별로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었다.
놀라운 것은 LA로 돌아온 후 백씨가 미안하다는 연락을 보내온 것이었다. 트래픽이 하도 복잡하여 40분 늦게 도착했다고,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그것 역시 의외라는 생각을 지금껏 하고 있다.
6년 전인 2000년 샌타바바라 뮤지엄에서 백남준 초대전이 열렸을 때 나는 우리 특집부 기자들을 모두 데리고 단체로 오프닝에 갔었다. 몸이 불편한 백씨는 오지 않았지만 토요일이라 미니밴을 타고 소풍 겸해서 오랜만에 그의 작품들을 많이 구경하고 돌아왔다.
백남준씨가 타계했다고, 벌써 열흘 넘어 신문마다 그에 관한 기사들을 하도 많이 쏟아내기에 나도 내가 본 백남준씨 인생의 몇시간을 추억해 보았다. 18년전 썼던 기사를 찾아 읽어보니 내용은 대부분 지금 한창 신문들마다 떠들어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내가 좋아했던, 백남준다웠던, 졸면서 말했던 그의 답변들은 이런 것들이다.
-왜 아이가 없으세요
▲바쁘고 살기 힘들어서… 잘 키울 수가 없을 것 같아 안 낳았지
-여가는 어떻게 보내시나요.
▲낮잠 자는게 일이야.
-LA에서 전시장에 나가지 않는 시간에는 무엇을 하며 보내십니까.
▲작품 팔아서 돈 벌어야 하니까 부잣집들 찾아다니면서 인사하고 그러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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