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6-02-04 (토)
크게 작게
절망의 한가운데서 (하)

5월19일, 아버지의 모든 검사결과가 나오는 날이다.
승욱이의 여섯번째 생일을 일주일 앞둔 그 날, 승욱이의 스피치 교육이 있는 날이라 내가 함께 가지 못하게 되었다. 아버진 1시에 USC에 예약이 되어 있고, 승욱이는 같은 날 오후 5시에 UCLA에서 스피치 교육이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같은 교회에 다니시는 의사이신 김 장로님과 병원을 같이 가시기로 했다. 그래도 내가 가는 것보다 의학 전문지식이 있으신 의사 선생님과 함께 가니 그래도 좀 안심이 된다. 교회에 우리 가정을 아는 분들은 다들 걱정이 대단하시다. 그래서 무엇이든 도와주시려고 전화가 빗발친다.
회사에서 일을 하는데 일이 전혀 집중이 되질 않는다. 요즘 들어 사무실 나의 작은방에서 하도 소리 없이 우는 일이 잦아 일이 많이 밀린다. 다행히 우리 사장님이 같은 교회에 다니고 우리 집 사정을 너무 잘 아시는지라 모든 것은 그저 이해해 주시고 있다.
멍하니 오전시간을 보내고 오후에 일찍 집에서 승욱이가 오길 기다렸다가 함께 UCLA로 가면서 계속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와 전화 통화가 되질 않는다. 승욱이의 스피치 교육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머릿속은 온통 아버지의 검사 결과에 신경이 다 가있다.
승욱이의 스피치 시간이 끝나고 선생님과 여유 있게 말할 틈도 없이 UCLA를 서둘러 빠져 나왔다. 역시나 고속도로는 꽉 막혀 있다. 차의 움직이는 속도와 내 마음은 하늘과 땅 차이다.
계속해서 엄마에게 전화를 하니 어렵사리 전화가 연결이 되었다.
“엄마! 엄마, 어디야?” 엄마가 울먹인다. 너무 울어서 목소리가 완전히 쉬었다.
“엄마, 의사가 뭐래? 많이 나쁘대? 말 좀 해봐”
“아버지가… 아버지가 폐암 말기래. 길어야 6개월… 아마도 올해를 넘기기가 힘들다고 하네”
“수술하면 되잖아. 수술도 안 돼?”
“벌써 옆구리 늑골 쪽으로 전이가 되었대. 그래서 그렇게 아프고 힘이 들었던 거래…”
할말이 없다. 엄만 가족회의를 해야 한다고 일단 삼촌집으로 오라고 했다. 차를 몰고 가는데 눈에서는 한번도 그리 많은 양을 쏟아본 적이 없는 양의 눈물이 흐른다. 이 작은 눈에서 어찌 그리 많은 양의 눈물이 나올 수 있는지. 너무 기가 차고 어이가 없다.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를 듣고 또 어찌할 바를 몰라 하나님께 따져 묻기 시작했다.
‘하나님 이건 말도 안 되요. 무슨 시련을 이리도 끊이질 않고 주시는 거예요 왜요? 하나님이 주신 승욱이도 감사함으로 키웠구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 의지하고 여기까지 왔다구요. 아버지 아프게 하지 않아도 우리 그저 감사하며 열심히 살 건데 도대체 왜 그러셨어요. 왜요? 왜 하필 우리 아버지냐구요. 왜요? 도대체 언제까지 우리 가정을 이리 힘들게 하실 꺼냐구요! 우린 하나님 자녀라면서 하나님은 하나님 자녀가 이리 힘들고 괴로운 것이 좋으세요? 말 좀 해 보시라구요!’
마음엔 온통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 차 있다. 이걸 어디 가서 보상받나… 이걸 이떻게 해야 하나… 아버지의 부재를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두려운 생각과 걱정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멀리 삼촌집이 보인다. 거울을 보니 내 얼굴이 사람 모습이 아니다.
침착하자… 그런데 내가 어떻게 엄마를 그리고 아버지를 위로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마음으로 엄마 아버지를 볼 수 있을까…

김 민 아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