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떼를 치며 ‘죽 쑤지는 않았는지?’

2006-01-1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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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벽의 시계가 새벽 4시를 가리킵니다. 송구영신 예배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하며 인사하던 소리가 지금도 여전히 귀에 쟁쟁합니다. 몇 시간 후면 다시 주일 1부 예배를 인도할 시간입니다. 눈이 몹시 무겁습니다. 깜빡 졸기도 했습니다. 어제 새벽부터 24시간을 뛰어왔으니까요.
조금 더 설교 정리를 하고 집에 다녀와야겠다 생각하던 중 얼마 전 읽었던 ‘빵 굽는 CEO’(김영모 저)란 책으로 눈이 갑니다. 서울 서초동에 있는 김영모 제과점의 사장인 김영모씨는 제과점의 제일 큰 대목인 성탄절을 앞두면 모든 제빵 기술자들과 함께 비상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선물용으로 쓰는 케이크를 맛있게 준비하기 위해 성탄일 직전 2-3일은 직원들과 밤새고 몇백 개의 케이크를 굽는다고 합니다. 케이크를 많이 사서 먹기도 하고 선물하기도 했지만 제과점에서 선물용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그렇게 수고하는 지는 잘 몰랐습니다.
명절이 되면 모두들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쉬지만 이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기 위해 더 바빠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그 중의 한 부류입니다.
2006년 신년 예배를 영어 회중과 함께 하는 지라 이중언어로 설교를 준비해야하는 부담이 꽤 무겁습니다. 이번에는 성탄절과 1월 1일이 모두 주일과 겹치는 바람에 성탄축하예배, 송구 영신예배, 신년예배 준비로 꽤 분주합니다. 또 이 모든 예배를 자녀들, 영어 회중과 함께 하기에 그 준비에 시간이 꽤 걸립니다.
10년 전 담임목사가 되고 난 다음부터 교회의 중요한 절기에는 늘 긴장이 많이 되어왔습니다. 단순히 옆에서 지켜보던 때와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시간은 한정되어있고 행사와 설교 준비는 많고 해서 소파에서 쪼그리며 자기도 합니다. 집에 가서 옷만 갈아입고 오기도 하고 예배가 가까워오면 가슴이 꽁딱꽁딱 뛰기도 합니다. 이러한 분주함 속에서 남모르게 수고하는 많은 분들의 정성과 애씀으로 성탄절과 신년주일을 감격 속에서 맞았습니다.
은혜와 감격으로 하루를 지낸 다음날 아침, 감기가 심하게 걸려 콜록거리며 잠자리에서 일어난 아들에게 아내가 묻습니다. “죽 만들어줄까?” “엄마, 죽은 아픈 사람만 먹는게 아니래요!” 신년예배 설교에서 나온 죽에 관한 내용을 알아들은 모양입니다. 설교에서 죽에 관해 새로운 시야를 열어준 책 ‘꿈꾸는 죽장수’(김철호 저)에 대한 내용을 잠깐 다루었습니다. 아프거나 소화가 안 될 때 먹는 음식, 속이 불편할 때 먹고 금식 후에 위를 준비시키기 위해 먹던 음식… 이런 죽에 대한 일반인의 생각을 불식시키려는 노력. ‘젊고 건강한 사람들의 영양가 있는 한끼 식사’라는 새로운 생각을 펼치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 책 속에 담겨 있었습니다. 그 부부는 맛있는 죽을 개발하기 위해 정성을 다했습니다. 본(本)죽 전문점을 열기 전 6개월간을 각종 죽을 만들어 집안 식구들 모두가 날마다 식사로 먹었다고 전합니다. 오죽했으면 저자의 어머니는 더 이상 죽을 드시지 않을까요?
“내 빵 먹고 행복하세요!”란 모토로 빵을 굽는 CEO. 개인에게 알맞는 맞춤 죽을 목표로 뛰는 죽 장수. ‘목회자인 내가 구운 빵(?)을 먹고는 얼마나 행복할까?’‘맛있는 맞춤 영양죽을 대접했는가?’ 혹시 ‘죽 쑤지는 않았는지?’오늘도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고 태 형 목사
(선한목자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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