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떼를 치며 ‘해변의 감사’

2005-11-2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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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목회하는 한 가난한 목사님이 계셨다. 마침 추수감사절을 맞아서 범사에 늘 감사하라는 주제로 설교를 하고 집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탄 것이다. 감사하게도 빈자리가 눈에 들어와 얼른 앉을 수가 있었다. 피곤한 자기에게 빈자리를 예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찜찜한 것은 그 자리가 혼자 앉기에는 넓고 둘이 앉기에는 비좁은 어정쩡한 자리라는 거였다. 그래도 그냥 모른척하고 앉아있었는데 다음정거장에서 문제가 생겼다.
아주 뚱뚱한 미국 아줌마가 아이들을 다섯이나 데리고 지하철을 탔는데 아이들이 짜증이 날만큼 너무 시끄럽게 떠드는 것이었다. 문제는 무례하게 떠드는 아이들을 자제하지도 않으면서 “Excuse me!”도 없이 다짜고짜 그 큰 궁둥이를 들이밀고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자리에 앉자마자 궁둥이를 툭툭 치니까 얼마나 힘이 센지 자기는 그냥 쪼그리고 앉는 신세가 된 것이다. 순간 너무 기분이 상하고 화가 나기 시작했다. 무례한 아줌마 때문에 마음이 상해 있을 때에 갑자기 마음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오늘 설교한 네가 왜 감사대신에 짜증을 내느냐?”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런 상황에서는 감사할 것이 별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이 목사님의 얼굴에 미소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감사의 조건을 깨닫게 하신 것이었다. “하나님, 이 여인이 제 아내가 아닌 것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어떤 글에서 읽은 재미있는 이야기지만 감사의 마음은 환경이나 조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에서 온다는 말은 정말 맞는 것 같다. 목회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어떤 분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좋은 환경을 가졌어도 그냥 형식적으로만 감사절을 지내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분들은 별로 좋은 환경도 아닌데 감사의 감동에 흠뻑 젖는 분들을 만나게 된다.
1620년 12월26일, 플리마우스 해변에 있었던 사람들이 바로 이러한 감사로 목이 메었다. 별로 감사할 것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가난했고 지쳐있었으며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아무런 보장도 없었다. 옷은 남루하고 식량은 없고 당장 매서운 겨울밤을 피할 집도 없었다.
그러나 해변의 사람들은 모래를 하늘로 던지며 환호성과 함께 감사의 찬송을 부르고 서로를 끌어안고 눈물로 기뻐하며 감사를 나누고 있었다.
메이플라워 배를 타고 아메리카에 막 도착한 146명의 청교도들이었다. 걷는 속도보다 훨씬 느린 시속 2마일밖에 안되는 배를 타고 117일간 계속 항해할 수 있었음을 감사했다. 폭풍을 만나서 제일 중요한 돛이 부러지고 사람들이 높은 파도에 밀려서 바다에 떨어지기도 했지만 무사히 구출된 것을 감사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공격 때문에 안전한 상륙지를 찾느라고 한달을 지체했지만 결국 안전하게 상륙할 수 있었음을 진심으로 감사했다.
해변의 감사! 광야에 던져진 당아새 같은 그들을 위대한 미국의 조상으로 바꾼 신비로운 힘이었다.


우 광 성 목사
(은강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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