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재철 목사 짧은 글 긴 여운

2005-11-1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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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적

지난 10월 14일 새벽 1시 즈음에 미국 뉴욕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후러싱제일교회 창립30주년 기념집회 첫날의 모든 순서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기 직전이었습니다. 왠지 내일 설교카드를 확인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 다시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응당 있어야 할 두 번째 날 설교카드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가방에서 나온 것은 전혀 엉뚱한 카드였습니다. 아예 서울에서 잘못 챙겨온 것이었습니다. 해외집회에 나가 다음날 설교할 카드를 하루 전날 밤에 확인한 것도 그날이 처음이었고, 서울에서부터 카드를 잘못 들고 출국한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날이 새는 대로 전문(全文)을 외워야 할, 서울에서 그토록 정성스럽게 준비한 설교카드를 들고 오지 않았으니 난감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시간은 이미 새벽 1시를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주님 앞에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데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저는 즉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때의 한국 시간은 금요일 낮 2시를 막 지난 시간이었습니다. 제 서재 책상서랍에서 문제의 설교카드를 찾은 아내는 곧장 홍성사 미술부에 카드를 건넸습니다. 그리고 미술부 최정은 자매님이 설교카드 앞뒷면을 스캐너로 스캔한 그림파일을 제게 전자메일로 전송해 주었습니다.
제가 호텔방에서 그 그림파일을 받은 것은 아내에게 전화를 건 지 10분이 채 되지 않아서였습니다. 그림파일을 여는 순간, 제가 두고 왔던 설교카드가 마치 신비스런 마술처럼 노트북 화면에 선명하게 펼쳐졌습니다. 단 10분도 되기 전에 태평양을 오가며 이루어진 그 감동의 파노라마는 경이로움을 넘어 기적처럼 여겨졌습니다. 그와 동시에 C. S. 루이스의 지적처럼,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인간의 인생화면에 비쳐진 것보다 더 큰 기적이 없다는 사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뼈저리게 느껴졌습니다.
과학의 발달은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적적인 사랑을 구체적으로 확인시켜 주는 하나님의 또 다른 기적적인 은총입니다.

2005년 11월 ‘쿰회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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