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 속의 부처 ‘깨달음의 새벽’

2005-11-1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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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군들의 위협과 유혹을 물리치고 난 싯다르타 태자는 보름달이 밝은 밤, 보리수 밑에 다시 홀로 남아 마음을 고요히, 깊이 가라앉혔다.
그 가라앉힘의 첫머리에서 그는 옳고 그름을 뚜렷이 갈라 붙인 다음 자신에게 있는 악의 씨앗을 모두 뽑아 버렸다. 그리고 나서 온누리에 있는 악한 이데올로기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곱씹어 그게 무엇인지 꿰뚫어 알아 버리니, 깨끗한 마음이 한 곳에 가득 모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자 이제 자신의 안에서 더 이상 선과 악의 분별마저 사라져 서로 부딪치지 않았고 이제껏 속에서 끊임없이 다투던 선악의 싸움이 그쳤다.
세번째 단계에 이르자 이전에 가졌던 자기 중심적인 의지를 모두 놓아 버렸다. 스스로 몸과 마음에 대한 요구와, 대상이 어떻게 되어야 된다는 자신의 의지 작용을 없애 버렸더니 강박관념과 갈등은 사라지고 몸은 마음으로부터 놓여나고 마음은 몸으로부터 풀려나 최고의 안락과 평안을 누릴 수 있었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선악이 하나 되고 선악의 가치 분별은 완전히 사라졌으며 몸과 마음은 서로 기대되 서로 얽어매지 아니하고 괴로움, 즐거움이 갈등이나 해방의 의미가 아닌 당연한 것으로 다가오더니 마침내 즐거움이란 것마저도 사라지고 오로지 마음의 고요함과 다함, 밝게 꿰뚫어봄만 남았다.
자신과 대상의 경계가 허물어져 나와 남의 삶이 둘이 아님을 알게 되고 참된 법의 누리를 내보이는 만다라가 눈앞에 펼쳐지니 싯다르타는 이 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세 가지 눈을 차례로 얻어 손금 보듯 이 만다라를 살펴보았다.
초저녁이 되어 첫째 앎을 얻으니 완전히 깨끗해진 하늘눈을 가지고 모든 중생의 죽음과 새로 남, 그 생사의 원리를 알게 되고 업과 인과율의 원칙을 깨달으니 온갖 중생이 끝없이 윤회하며 고통 속에 빠져 있는 모습을 낱낱이 보았다. 이것이 하늘 눈으로 공간 꿰뚫기, 즉 천안통이다.
한밤중이 되어 둘째 앎을 얻는데 그것은 전생을 보고, 그 전생의 전생을 보고, 그러다가 모든 중생의 점점 많은 생을 완전히 다 보게 되니 마음은 자비심으로 가득 찼다. 영원한 현재, 무시간성을 보게 된 것이니 이것이 시간 꿰뚫기, 즉 숙명통이다.
새벽이 되어 셋째 앎을 얻으니, 나고 늙고 병들고 죽어 가고,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고 미운 이와 만나며, 얻고자 하나 구하지 못하며 존재 그 자체로부터 짓눌리는 그 모든 괴로움이 반드시 원인이 있음을 보았고 수많은 아픔과 쓰라림의 뿌리를 더듬으니 그것은 성냄, 탐욕, 어리석음이라는 뿌리였다.
이것이 있으니 저것이 있고 이것이 사라지니 저것이 사라진다. 이러한 고통의 열두 고리 사슬을 하나하나 톺아 보고 네 가지 거룩한 진리로써 이를 끊는 방법을 깨쳤으니 이것이 고통 끊는 법 꿰뚫기, 즉 누진통으로서 이로써 위없는 두루 바른 깨침은 완성되고 모든 어둠은 말끔히 걷히어 서른 다섯 살의 싯다르타는 부처가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2514년 전 섣달 초여드레, 새벽 하늘에 샛별이 빛날 때였다.


이 원 익
(태고사를 돕는 사람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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