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하느님 함께 하시니 승리의 월계관을

2005-11-0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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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이슬처럼 영롱한 가을, 국화꽃 향기 그윽한 이맘때면 가을 속에 아름다운 추억이 담긴 사연들의 글씨가 피어오른다. 길게 누워 있는 신작로 양편엔 가을 바람에 코스모스 꽃들이 여리게 흔들리고 벌들이 그 위를 나는 한적하고 평화스런 시골, 아이들은 아예 집에서부터 청 백 머리띠를 두르고 설렌 마음으로 학교에 갔다.
교무실 앞에 서있는 국기봉이 점이 되어 분도기 모양으로 맨 줄에서 만국기가 펄럭이고 운동장 곳곳에 그어진 흰 선들과 교단을 중심으로 세워진 천막들, 그리고 선생님 목소리가 운동장 끝까지 찌렁찌렁 들리는 신기한 스피커. 운동회 날이었다.
분 냄새 물씬 풍기는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에 따라 줄을 지어 운동장에 입장하고 양팔 간격으로 넓힌 뒤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음악소리와 구령에 따라 우리 모두는 국민체조를 했다.
낮은 학년부터 100m 달리기와 바구니에 오제미 넣기, 오제미로 던져 긴 장대에 매단 둥근 종이 공 터뜨리기. 공이 터져 오색 종이 가루와 테입이 쏟아져 내릴 때의 기쁨과 승리감, 줄다리기, 동네 어른들의 단축 마라톤(상으로 냄비나 비누를 탔다), 덤부린, 기마전, 그리고 끝으로 릴레이가 있었다. 100m에서 1, 2, 3등은 공책이나 연필을 받았고 승리 팀에게도 연필 한 자루씩 주었다.
지난주에는 롱비치에서 마라톤 대회가 있었다. 날씨는 흐렸지만 달리기하기엔 아주 좋아 연습을 많이 한 선수들은 좋은 성적을 냈을 것이다. 시작은 누구나 잘 할 같다. 그러나 얼마나 준비를 했고 또 자기 페이스를 잘 유지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시원한 바닷바람, 아름다운 풍경, 매 마일마다 물 공급과 응원, 재미도 있지만 18~20마일쯤에서 만나는 인간 한계. 힘이 들어 포기하고 싶은 마음의 갈등. 갈 길은 먼데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아 조금 만이라도 걷고 싶은 마음, 응원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왔다고 하는데 끝은 보이지 않고 목은 타고 다리에 쥐도 나고 정말 힘든 26마일.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스피커 소리가 들리며 마침내 골인 점이 보이면 언제 내가 힘들었던가 하고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더 빨리 달려 골인 지점을 통과한다.
골인 지점을 통과하는 순간 우리 모두는 승리자가 된다. 하느님은 인간의 외면을 보시고 판단하지 않고 내면을 판단하시기에 진지한 싸움에서 이긴 우리를 승리자로 보실 것이다.
성경 말씀에 “ 여러분도 힘껏 달려서 상을 받도록 하십시오. 경기에 나서는 사람들은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야 합니다.” (1 고린도 9:24-25)
그러나 우리는 진정 썩지 않는 월계관을 얻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 썩지 않는 월계관이란 사랑과 평화, 그리고 기쁨에 넘치는 하느님 나라가 아닐까?


임 무 성
(성아그네스성당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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