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 속의 부처 ‘유혹의 밤’

2005-10-2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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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에 대한 바른 답을 찾고자 임금의 자리를 뿌리치고 집을 나선 싯다르타 태자는 우선 그 당시 이름높던 쪽집게 큰 스승들을 차례로 찾아 배움을 구했지만 그 들의 목적과 방법이 만족스럽지 못하자 미련없이 떠났다.
할 수 없구나. 나 스스로 해야지. 그리하여 네란자라 강변 아름다운 곳에 자리잡고서는 다른 다섯 고행자들과 함께 쌀 한 톨로 하루를 견디면서 이를 악물고 고행을 이어 가니, 마침내 배를 쓰다듬으면 등뼈가 잡히고 다리를 만지면 털이 절로 떨어지며 땀은 비오듯 하고 귀에서는 윙윙 미친 바람소리가 나기에 이르렀다.
이러다간 몸이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음을 깨닫고 양극단을 피한 중도의 길을 가기로 마음을 고쳐먹고는 마침 아기를 낳아 근처에 축원을 하러 온 수자타라는 여인에게서 쌀과 소젖으로 만든 죽을 얻어 마셨는데, 함께 고행하던 다섯 동기들은 이를 보고 혀를 쯧쯧 차고는 떠나버렸다.
외톨이가 된 싯다르타는 숲 속 깊이 있는 보리수 아래로 자리를 옮겨 모질게 마음먹고 동쪽을 바라보고 앉았으니, 살갗이나 힘줄이나 뼈가 말라붙어도 좋다.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기 전에는 결코 이 자리를 떠나지 않으리라고 사생결단을 하였다. 그러자 죽음의 신 마라가 다가와 한 눈에 그를 알아보는데, 이것 된통 큰일 났구나, 너가 있음은 나는 없음이리니. 나 또한 사생결단, 너를 꾀어내고 호려 내어 꺾지 못하면 이 마라의 존재조차 물거품이 되고 말리라.
마라는 무시무시한 악마의 군사들을 몰고와 창끝으로 싯다르타의 목줄대를 겨냥하고 공중에 휙휙 칼날을 그으며 싯다르타에게 자리에서 물러서라고 을러댔다. 그러나 이때까지 쌓아온 착하고 거룩한 마음과 짓의 힘이 보이지 않게 싯다르타의 몸을 둘러싸니 마군의 창칼로는 털끝 하나 다칠 수 없었다.
그러자 마라는 심리전으로 돌입하여 선전선동술로 나발을 부는데, 너의 공덕이 무엇이냐, 네까짓 것 그렇게 앉아 있어 봤자 모두 헛일이다. 누구누구 폐인 된 꼴을 보지 못했더냐, 성불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구나, 가엽고 한심한 친구로세. 아니라면 내 손에 장을 지져라. 그러자 마군들이 와글와글 맞장구치며, 누구도 그랬다, 방금 내가 보고 왔다며 온갖 걸 증거랍시고 갖다대고 들쑤시지만 싯다르타를 거드는 증인은 아무도 없었다.
이에 마라는 더욱 의기양양하여, 그대는 졌다, 패배자라고 외쳐댔다. 그러자 싯다르타는 오른손 끝을 땅에 대고 차분히 입을 열어 물리치되, 오, 마라여, 만물의 공평한 어머니, 이 땅이 나의 증인이다. 그러자 갑자기 우레가 울고 땅이 흔들리다 갈라지며 그 속에서 대지의 어머니가 증인이 되어 솟아올랐다. 부처님 상 가운데 오른 손끝을 땅에 대고 있는 항마촉지인이 바로 이 모습이다.
마라는 마지막으로 ‘불만녀’와 쾌락녀’와 ‘욕망녀’ 세 딸을 데리고 나타났다. 이 자매들은 효성도 지극하여, 남자의 눈을 흐리게 하고 마음을 어지럽히며, 하던 일을 멈추고 가던 발길을 돌리게 하는 서른 두 가지의 갈고 닦은 노하우를 애비를 위해 잠도 안 자고 곰비임비 총동원하였지만 도대체가 요지부동, 이윽고 하늘 한 쪽 자락에 희붐하게 동트는 기색이 비치니, 그 집요한 유혹의 밤도, 마군들도 딸들도 허깨비처럼 사라지고 싯다르타는 다시 고요한 물 낯바닥과 같은 마음으로 깊은 선정에 들어갔다.


이 원 익
(태고사를 돕는 사람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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