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무엇이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가

2005-10-2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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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목이가 죽었어. 지금 장사 치르고 들어오는 길이야”
전화를 받으시는 아버님의 목소리가 너무도 우울하고 어둡게 들려왔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님이 말씀하시는 순목이란 분은 아버님의 가장 절친한 동갑내기 평생 친구셨다.
소학교 때부터 한동네에서 함께 자라나셨다. 함께 신학교를 가고, 함께 목사가 됐고, 같은 지방에서 함께 목회활동을 하다가 함께 은퇴를 하고도 같은 동네에서 함께 사셨다.
이제 팔순을 막 지나시는 아버님께 전화를 드릴 때면, 거의 많은 이야기가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셨다. 친구들과 강릉에 가서 맛있는 회를 먹고 오신 이야기며 혹은 아버님이 사시는 원주 치악산 골짜기에 모여 춘천 막국수를 맛있게 드신 이야기 등이었다.
물론 함께 어울리는 친구분들이 계셨지만 항상 친구 임순목 감독님은 첫 번째로 거명이 되셨다. “임 감독이랑 누구누구…” 늘 이런 식이었으니까.
그리고 이제 가장 가까웠던 친구의 장례를 마치고 막 들어오셨으니 당연히 마음이 우울하시겠지만, 먼 미국에서 힘없이 늙어가시는 아버님의 목소리를 듣는 나는 마음이 철렁했다. 이러다가 괜히 아프시는 게 아닌가?
그리고 나는 다시 앨라배마 몽고메리로 집회를 떠났다. 집회를 하는 동안엔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집에 돌아오자 다시 한국의 아버님 생각이 나서 얼른 전화를 드린 것이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는 아버님의 목소리는 여전히 힘이 없는 노인의 음성이셨다. 조심스럽게 아버님의 목소리를 살피면서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힘을 주어 말했다.
“아버님, 여기 미국이에요” 그러자 갑자기 아버님 목소리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싶어 대충 근황을 묻고는 “어머님은요?”라며 어머님의 안부도 물었다. 바꿔 달라는 것도 아니었는데 아버님은 벌써 어머니를 부르고 계셨다.
“할마이!, 미국 전화야. 미국 아이 목소리 들어봐야지!” 어머님을 향해 소리치는 아버님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렸는데 너무도 생기가 넘치는 목소리였다. 더욱이 아버님이 어머니를 ‘할마이’라고 부르고 계셨는데 ‘할마이’라고 농담을 건네실 땐 당신의 기분이 아주 좋다는 뜻이었다.
기분 좋게 전화를 끊었는데 여전히 내 마음엔 뭔가가 남아 있었다. 아들이 뭐길래 전화 한통 가지고도 이토록 기분이 좋아지실 수 있는가?
봉제공장을 하느라 늘 피곤해 하는 L집사님은 특별히 지친 날이면 집에 오자마자 아이들 방으로 먼저 들어간단다. 그리고 아이들이 평화롭게 잠자는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노라면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용기가 생기며 피곤이 풀린다고 했다.
또 다른 집사님은 곤하게 자고 있는 자신의 아내를 바라보며 남몰래 울었다고 했다. 하루 종일 고생해서 피곤이 역력한 얼굴이지만 남편의 등뒤에 얼굴을 묻고 잠들어 있는 아내를 보고 있으면 자신의 할 일이 분명해진단다.
무엇이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가? 아주 가까이에 있는 그 무엇이 분명한 것 같긴 한데…


우 광 성 목사
(은강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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