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성지화작업 아쉬운 ‘골고다의 언덕’

2005-10-1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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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길 ‘비아 돌로로사’는 기독교 순례자들과 아랍상인들이 어울려진 시장바닥

6개국 단체에서 관리

Via Dolorosa(비아 돌로로사)는 한글로 ‘고난의 길’이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비아 돌로로사’가 워낙 유명한 단어이기 때문에 원어로 부르는 것이 더 실감이 난다. 라틴어로 via는 ‘길’, dolorosa는 ‘고난’이라는 뜻이며 예수가 빌라도의 재판을 받은 곳으로부터 십자가에 못 박힌 골고다의 언덕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 예수가 부활한 무덤도 이 곳에 있기 때문에 크리스찬에게는 성지 중 성지이고 바로 이 곳을 회교도들이 파괴했다 하여 십자군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비아 돌로로사의 끝 지점, 그러니까 골고다의 언덕에는 ‘성스러운 무덤교회’로 불리는 대형 교회가 세워져 있다. 이 교회 건물은 6개국 기독교 단체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로마 가톨릭,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안, 에티오피아, 시리아, 이집트 콥트교회 등이 서로 부분적으로 소유하고 있다. 그런데 교회의 정문 열쇠는 아이러니칼하게도 무슬림이 갖고 있다.
‘비아 돌로로사’는 크리스찬에게 있어 예루살렘 순례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이 곳을 돌아보고 놀라는 것은 비아 돌로로사가 아랍인들의 장바닥으로 변해버린 사실이다. 0.5마일에 이르는 비아 돌로로사 골목에는 옷가게, 고물상, 기프트샵, 식품점 등 아랍인의 상점들이 줄을 잇고 있다. 크리스찬들은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올라간 길이 성역화 되지 못하고 시장바닥이 되어 있는 현실에 마음 아파한다. 비아 돌로로사는 콘스탄틴 대제가 로마인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허락하자 그의 어머니 헬레나가 이 곳에 달려와 대대적인 작업을 벌인 끝에 예수의 무덤과 십자가에 못 박힌 지점을 찾아낸 것이 그 형성의 계기다. 헬레나는 골고다의 언덕에 ‘성스러운 무덤교회’를 세웠으나 무슬림이 쳐들어와 파괴했다. 그 후 십자군이 다시 이 지역을 점령해 새 교회를 짓고 200년 동안 관리하다가 1187년 회교도인 살라딘왕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자 골고다 언덕은 700여년 동안 거의 버려지다시피 해 시장바닥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예수는 과연 어떻게 생겼을까. 우리 눈에 익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 얼굴대로의 모습일까. 고고학자들은 예수의 골격이 당시의 유대인 골격에 비해 너무 작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영국의 BBC 방송은 학술 자료를 근거로 예수의 얼굴을 재생해 보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얼굴보다 머리와 눈이 큰 것으로 나타나 있다. (사진)
비아 돌로로사는 예수가 재판받고 십자가에 못 박힐 때까지 14개의 스테이션(지점)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4번째 스테이션이 어머니 마리아를 만난 곳이고, 5번째는 예수가 쓰러지자 사이몬이 대신 십자가를 멘 지점, 5번째는 베로니카가 예수의 이마에 흐르는 피땀을 닦아준 장소 등으로 되어 있다. 이 곳을 방문하는 순례자들 중에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비아 돌로로사를 올라가는 경우가 많으며 여기에는 한국인 크리스찬을 빼놓을 수가 없다. 십자가는 입구에 있는 교회에서 빌려주는데 짊어져 본 사람들은 “일평생 가장 감격스러웠다”고 이구동성으로 감격한다. 크리스찬들은 ‘비아 돌로로사가 있는 예루살렘을 둘러보는 것이 성경 백번 읽는 것보다 낫다고 말한다. 예루살렘이야말로 ‘백문’이 ‘불여일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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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의 십자가 고난 행진 재현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관광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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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오른 예수의 고난을 재현해 보이고 있는 한국인 순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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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고다 언덕 꼭대기에 있는 ‘성스러운 무덤교회’의 뒷문. 이 지역은 에디오피아 성직자들이 관리하고 있다.


이철 <이사>
c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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