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르띤의 스페인어 회화와 중남미 문화 산책 ¡Hola! amigo

2005-10-0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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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남미 ABC 3국과 스페인 제국

제415회. 스페인 제국 20. 무적함대의 패퇴 4

첫번째 보물행렬의 기습에 실패한 드레이크는 석달 후 다시 보물행렬을 기습하여 수십 마리의 나귀에 실린 보물을 약탈하는데 성공하였다. 스페인인들은 첫번째의 공격이 시마네로스의 공격으로 오인하고 호송 병력을 증강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공격에 나서자 몇 안 되는 호송병들은 전투도 없이 도망쳐 버렸다. 보물을 실은 그의 배가 고향인 폴리머스항에 입항했을 때 종소리가 도시 전체를 뒤흔들었다. 도시민들은 모두 나와 세계 제국을 공격한 용감한 선원을 열렬히 환영하였다. 드레이크가 파나마에서 보물을 약탈하고 귀환한지 4년 후 여왕과 자본가들의 투자금으로 막강한 선단을 조직하고, 스페인 보물선 나포를 노리던 드레이크는 드디어 페루 앞 바다에서 스페인 보물선 한 척을 나포하였다. 나포된 선박에는 막대한 양의 금은과 식민지와의 교역품이 실려 있어 약탈품을 ‘황금색 암사슴’호로 옮기는 데만 꼬박 6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드레이크가 아프리카의 해안을 거쳐 영국으로 귀환했을 때 그는 영웅이 되어 있었으며, 엘리자베스 1세는 드레이크를 만나기 위해 몸소 ‘황금색 암사슴’호를 방문했고, 약탈에 투자했던 투자가들은 4,000%의 배당을 받았다.
드레이크의 업적이 얼마나 대단한가는 여왕의 해적선 방문으로 증명되었으며, 여왕은 축제 분위기 속에서 ‘황금빛 암사슴’호의 갑판에서 열린 디너파티에 해적과 함께 참석했다. 드레이크가 예뻐 죽겠는 엘리자베스는 그 자리에서 그에게 기사작위를 수여하고 공로를 치하하였다.
귀족의 칭호 및 새로 획득한 부의 덕택으로 드레이크는 귀족생활을 즐기게 되었다. 그는 거의 매일 여왕을 알현했으며 약탈품 중에서 고른 수많은 선물로 그녀를 기쁘게 했다. 그는 그녀에게 그의 모험담과 항해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그는 정말 이야기를 잘 하는 이야기꾼이었으며 매력 있고 유머가 풍부한 사내였다. 결혼 안한 여왕과 매일 만나는 바람에 그들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도 여왕의 애인이었을까?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은 없다.
해적에서 귀족으로 신분이 상승한 드레이크는 플리머스 시장과 하원의원을 거친 후 1588년에는 당당히 영국 함대의 부사령관으로서 칼레 앞 바다에서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였으며, 1596년 56세 때 파나마에서 열병으로 사망하였다.
드레이크는 영국에서 영웅 중의 영웅이었고 지금껏 트라팔가르의 해전의 영웅인 넬슨과 함께 해신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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