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르띤의 스페인어 회화와 중남미 문화 산책 ¡Hola! amigo

2005-09-3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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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남미 ABC 3국과 스페인 제국

제412회. 스페인 제국 17. 무적함대의 패퇴 1

레판토 해전 이후,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에스파냐의 펠리페 2세는 안 그래도 열 받고 있는 데다가, 프란시스 드레이크라는 영국 해적이 스페인의 은 수송선을 습격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자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드레이크의 인도를 요청하였다. 물론 엘리자베스는 한마디로 거절하였다. 드레이크는 그냥 해적이 아니라 막대한 스페인의 은을 탈취한 후 영국 정부에 갖다 바치는 동업자였던 것이다
“좋다 너희들이 코피가 나봐야 알겠구나”
펠리페는 무적함대 창설이라는 대담한 계획에 착수하였다. 그는 이 강대한 함대 창설에 그의 모든 것을 걸었다. 이 대함대의 성공 여부는 스페인의 세계 최대의 제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영국의 해군을 누르고 최강의 세력으로 비상하느냐에 대한 그의 야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펠리페 2세는 막대한 돈을 투자하여 130척의 전함, 20척의 갤리선 그리고 3만의 해군을 훈련시켰고 메디나 시도니아 공작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이 함대는 수에서나 막강했지 배의 성능도 영국에 뒤지고 함포의 성능에서도 크게 뒤졌다. 종합적인 전술도 입안되지 않았고 작전계획이 누설되는 등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영국-에스파냐 해전에서 해적이면서도 영국 함대의 부사령관을 맡아 무적함대(Armada invincible)를 패퇴시킨 프란시스 드레이크는 누구인가?
드레이크는 1540년 영국 남서부의 작은 도시인 테비스톡 근교의 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당시 신구교 갈등에 휘말린 드레이크의 아버지는 그가 어렸을 때 고향을 등졌고 그는 어린 시절을 먼 친척인 홉킨스의 집에서 보냈다.
성년이 된 드레이크는 홉킨스의 노예 무역선을 타고 남아메리카를 오가며 바다생활을 시작하였다.
홉킨스의 노예선은 스페인의 식민지에서 매매가 금지되어 있는 흑인 노예를 광산과 담배농장, 설탕농장 등에 팔았다. 당시 노예장사는 벌이가 좋은 장사였기 때문에 영국의 노예 밀수꾼들은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여러 번의 대양 항해를 거친 드레이크는 선장으로 승진하였다. 그는 스페인의 중요한 무역항인 산토도밍고와 리오하카 등의 항구에 입항할 때마다 스페인의 거대한 교역선들이 은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보물을 보관하는 탑이 높은 창고들을 보게 되었다.
그때마다 그는 식민지 노예 무역을 통해 얻는 이익이 얼마나 적은가를 실감하고, 언젠가는 자신도 스페인의 보물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키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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