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비즈니스 칼럼/ ‘말’ 보다는 ‘글’

2005-09-28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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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유미 변호사

인간 관계에 있어 상호간의 신뢰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다. 서로 믿지 못하는 사회는 불행한 곳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변호사의 입장에서 볼 때 ‘사람의 말’이란 ‘법적으로’는 별로 믿을 것이 못된다고
느낀다. ‘말’만으로 이루어진 계약. 거래내용. 혹은 약속은 ‘글’로 만들어진 문서보다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해 당사자의 사정. 이익에 따라 말은 언제든지 뒤집혀 질 수 있다.

속된 표현으로 ‘오리발’을 내밀며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고 우기면 대책이 안 선다. 그러므로 거래. 계약과 관련된 내용은 문서로 만드는 습관이 상거래의 기본임을 고객들에게 누누이 강조한다. 꼭 근사하게 보이는 문서일 필요는 없다. 상황에 따라서는 백지에 한글로 쓰고 서로 서명
만 이라도 했다면, 말로서 한 약속보다는 조금 더 구속력을 가질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아는 사람에게 얼마를 빌려줬는데 이제 와서는 줄 생각을 안하니 어떻게 하면 받을 수 있나요.” 이같은 질문은 한인들에게 가장 자주 듣는 내용 중 하나이다.그러면 물어본다. “수표로 주셨나요” “아니요. 현금으로 주었습니다.” “차용증서나 영수증은 받으셨나요” “아니요, 잘 아는 사이라서 그냥 주었습니다” “상대방의 집이나 가게에 담보 설정도 안하셨지요” “예. 친구 사이에 어떻게 그런 짓을 합니까” “그럼 돈을 빌려주었다는 근거가 전혀 없네요” “그렇지요.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그런데 빌려준 돈을 어떻게 받을 수 있습니까.” 이쯤되면 거의 사오정 수준의 대화다. 아무런 근거도 남기지 않고, “감쪽같이” 현금으로 빌려 준, 경우에 따라서는 당사자 이외에는 아무도 모르게, 그저 언제까지 갚겠고 다달이 이자는 얼마를 주겠다는 말만을 믿고 빌려준 돈을 받아내기란, 집에서 기르는 똑똑한 강아지에게 “엄마 아빠”라는 사람의 언어를 가르키는 것만큼 힘든 일이다.

비지니스 매매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자주 본다. “주 매상이 얼마라는데….” “셀러가 10년짜리 새 리스를 받아준다고 개런티했는데….” “일단 현금 얼마를 미리 달라는데….” 상대방이 말을 전적으로 믿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세상이겠는가. 그러나 ‘문서’로 만들어진 계약서의 조차 내용이 허위이거나, 지키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인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다. ‘말’ 보다는 ‘글’을 믿어야만 자신의 피해를 최소화 시키고, 최소한의 권리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이 ‘현실’임을 항상 머리에 새겨 두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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