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르띤의 스페인어 회화와 중남미 문화 산책 ¡Hola! amigo

2005-09-2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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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남미 ABC 3국과 스페인 제국

제405회. 스페인 제국 13. 레판토 해전 2

레판토는 동지중해의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 사이의 한 지명이며 이 해협 근처에서 전투가 벌어져서 레판토 해전이라 명명되었다. 이 해전은 지중해가 역사의 무대였던 기나긴 시대에 종지부를 찍은 전투였고 또한 갤리선(노를 저어서 가는 배)이 주역을 맡은 서양의 마지막 대해전이기도 하다.
16세기말의 대해전 중의 하나인 조일해전도 돛을 단 범선에 노를 젓는 배끼리의 전투로 한국측에서는 포를 쏘아 적함을 격침하였으나 일본 해군의 배에는 포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접근전에서 조총(화승총. 머스킷 총)을 쏘던가 적군의 배로 건너가서 백병전을 벌여야 했기 때문에 일본 해군이 조선 해군을 이길 수 없었다.
당시 조선 해군은 막강한 화력으로 일본 해군을 압도했으며 아마 4년 전에 있었던 무적함대가 몰락한 해전에 참전했어도 별로 뒤질 것이 없는 최첨단 함포를 장착한 함대였다.
영국-에스파냐 해전인 무적함대의 몰락도 영국 함대의 포의 성능이 우세한 것이 결정적인 승전 요인이 되었다. 이처럼 16세기말부터 해전의 우세는 결정적으로 포의 성능이 판가름하게 된다.
1571년 10월7일 드디어 레판토 해전의 막은 올랐다. 에스파냐의 왕인 펠리페 2세의 이복동생 오스트리아공 돈 후안이 총사령관인 신성동맹의 함대와 알리 파샤가 이끄는 투르크군의 전 함대가 레판토 앞바다에서 격돌한 것이다.
신성동맹 함대의 총사령관인 돈 후안은 누구인가?
돈 후안은 당시 26세로서 펠리페 2세의 이복동생이었다. 그는 육전에서 약간의 전투 경험을 쌓았을 뿐 해전에는 전혀 문외한이었다. 그러나 신성동맹의 대부분의 병력은 에스파냐 병력이었고, 황제의 동생이 총사령관이라는 것은 전체 함대의 사기를 위해서는 아주 바람직한 선택이었다. 당시 병력은 얼마 안되었으나 조선술이나 항해술은 동맹국인 베네치아 공화국이 뛰어나서, 두 나라의 연합은 대단한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이탈리아의 지금 베니스의 전신인 도시국가였으며, 지중해 무역을 장악하여 1500년 이상 융성하다가 나폴레옹의 침공으로 멸망한 나라이다.
적국인 투르크 해군 총사령관 알리 파샤를 보자.
술탄 셀림에 의하여 기독교 함대를 격파하라는 지상 명령을 받은 알리 파샤는 이슬람 궁정에서도 강경파와 온건파 중 강경파의 핵심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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