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르띤의 스페인어 회화와 중남미 문화 산책 ¡Hola! amigo

2005-09-0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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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남미 ABC 3국과 스페인 제국

제394회. 스페인제국 7. 신대륙 발견과 유대인 추방

이사벨라와 페르난도의 공동치세 때인 1492년 무어인의 그라나다 왕국이 항복하여 이베리아 반도의 재정복이 완전히 마무리되었다. 711년 아랍인들이 이베리아 반도를 침입하여 7년에 걸쳐 반도를 정복한 후 기독교도들이 되찾는데 거의 800년이 걸린 것이다. 또 이 해에 컬럼버스가 이사벨라의 후원으로 인도 탐험에 나섰다가 우연히 신대륙을 발견하였다. 바로 이 1492년이 이무기였던 스페인이 용으로 승천한 해인 것이다.
이렇게 스페인이 유럽의 주역이 되고 하나의 제국을 획득하는 과정의 서막이 바로 이사벨라와 페르난도의 결혼이었던 것이다. 제국의 초석을 놓은 이사벨라는 1504년 병사하고 이사벨라의 손자인 카를로스 1세 치세 때에 에르난 꼬르떼스의 아스떼까 제국 정복과 프란시스꼬 삐사르로의 잉카제국 정복이 성취되어 포르투갈령인 브라질을 제외한 전 중남미를 석권하여, 거의 기적적으로 단시일 내에 대제국으로 성장하였다.
신대륙을 정복한 전사들은 대부분 가난한 지역의 빈곤한 가문 출신이었으나 전쟁을 통하여 부를 획득하는 것에는 익숙한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은 결국 인디오와의 전쟁의 열매로 그것을 이룰 수 있었다.
가톨릭 공동왕(교황청에서 페르난도와 이사벨라의 공동 통치자에게 내린 이름)의 정책 중 가장 바보 같은 정책은 유대인의 추방이었다. 14세기 중반 전 유럽을 휩쓴 흑사병의 만연 때 많은 유대인들이 분노의 표적이 되어 학살당하였다.
그러나 스페인에서 유대인의 위치는 상공인과 관료사회 그리고 문학계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수세기 동안의 염원이었던 이교도의 추방을 성취시킨 스페인의 기독교도들은 자신들이 이교도의 위협으로부터 기독교 국가들을 지키는 성스러운 임무를 부여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주변의 오염을 제거하고 순결을 지켜야 했다. 그리고 그 모든 오염의 원천은 유대인들이라는 공동의 인식이 이루어졌다.
14세기 말부터 그들에 대한 개종의 압력이 거세졌고 많은 유대인들이 개종하여 콘베르소(개종한 유대인)가 되었다. 부유했던 유대인들은 개종 후 사회적으로 신분이 상승되었고 성직자도 배출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공동 왕의 청원으로 종교재판소가 설치되었고 개종하지 않은 유대인에게 스페인에서 떠나라는 추방령이 내려졌다.
겁먹은 12만~15만에 이르는 유대인이 스페인을 탈출하자 여러 도시의 상업이 활력을 잃었고 많은 자본과 기술이 스페인에서 빠져나갔으며 또 문학계에도 심각한 후퇴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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