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포도밭 없는 ‘술 익는 마을’

2005-09-0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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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와이너리 체험

어느덧 가을 햇살이 시어머니가 딸 아닌 며느리를 내보낼 만큼 따가워졌다. 대지의 모든 열매와 함께 포도송이도 짙은 색으로 익어가는 계절.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 빛을 받고 자란 탐스러운 포도송이가 달디 단 열매를 맺는 가을이면 와인 양조장도 바빠진다. 한 해 동안 지은 농사의 결실을 따다가 커다란 통에 넣고 맨발로 밟으며 포도주 담을 준비를 하는, 노동과 축제를 겸한 행사도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펼쳐지고 있다. 지난 5년 새 한인들에게 있어 와인의 의미는 그저 또 다른 주류 이상이 되어버렸다. 우리 시대 공동의 화두 웰빙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심장병 예방에도 좋다는 와인에 대한 매력을 증폭시켰다. 한인 마켓의 와인 섹션 강화, 와인 동호회의 증가, 본보 푸드 섹션과 같은 와인에 대한 깊이 있는 정보, 이 모든 요인들은 한인들의 와인 소비 증가와 관심의 확대라는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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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에 지어진 샌안토니오 와이너리의 건물은 LA카운티의 문화사적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와인 숙성과정 돌아보며
세계 명품 공짜 시음까지

남으로 태메큘라로부터 북으로 나파 밸리에 이르기까지 서해안을 따라 쭉 펼쳐지는 포도밭과 와이너리는 이 지역의 별명이 와인 카운티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이 계절, 나파 밸리나 소노마 카운티 등 고급 캘리포니아 와인 생산지를 방문한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일상의 굴레에 묶여있는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결코 쉬운 예기가 아니다.
조금 시간이 허락된다면 태메큘라의 와이너리, 그리고 지난 해 ‘사이드웨이’란 영화의 무대가 됐던 산타바바라 카운티의 와이너리를 다녀오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럴 시간조차 없다 하더라도 시내 한복판에 있는 와이너리라면 잠깐 짬을 낼 수 있지 않을까. LA 시내 한 가운데도 옹색하긴 하지만 와이너리가 몇 개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다운타운 한복판에 자리 잡은 샌안토니오 와이너리(San Antonio Winery).
북부 이태리에서 LA로 이주해 온 리볼리 가(Riboli Family)가 샌안토니오 와이너리의 문을 연 것은 지난 1917년의 일.
샌안토니오 와이너리는 올해로 벌써 88년째를 맞는 LA의 사적 가운데 하나이다. 카이젤 수염을 멋있게 기른 산토 캄비아니카는 새로 문을 연 와이너리에 그의 수호성인, 안토니오의 이름을 붙인다.
벽에 걸려있는 빛바랜 사진 가운데 커다란 눈이 매력적인 주인공은 그의 조카, 산토 스테파노. 삼촌의 사업을 물려받은 그는 올해 여든을 넘겼지만 좋은 와인을 마셔서인지 아직도 건강하게 일하고 있다. 그의 아내 매달리나와 아들딸 모두는 아버지와 한마음이 되어 리볼리 가의 유산을 가꾸어 가고 있다.
바로 옆에 흐르는 로스앤젤레스 강물로 재배하던 포도밭에는 마천루 숲이 들어와 있지만 샌 안토니오 와이너리는 소노마 카운티와 나파 밸리에 포도밭을 두고 있다.
가을이면 이곳에서 재배한 포도를 으깨 얻은 과즙을 숙성 장치가 있는 샌안토니오 와이너리로 실어 나른다.
너무 가까이 있다는 이유는 샌안토니오 와인이 눈에 안 찰지 모르지만 각종 대회에서 금메달을 받은 와인도 많이 있을 정도로 그 품질과 명성은 검증된 것들이다.
정식 교육기관에서 와인 제조와 포도 재배 학위를 받은 와인 메이커 안토니 리볼리는 나파 밸리의 그로스 와이너리에서 머물며 저명한 와인 메이커 마이클 와이스 밑에서 경험을 쌓기도 했다. 아르노 드봉은 프랑스 툴루즈에서 와인 제조 과정을 공부하고 보르도에서 실무 경험을 닦은 와인 메이커. 나파 밸리에서 일하던 그는 2년 전, 샌 안토니오에 합류했다.
샌안토니오 와이너리에는 리볼리 패밀리 비냐드(Riboli Family Vineyard), 산또 스테파노(Santo Stefano)와 같은 자체 브랜드 외에도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되는 모든 종류의 와인을 갖추고 있다. 카브네이 소비뇽, 멀로, 피노 노와르, 진판델 등 레드와인, 샤도네이, 쇼니뇽 블랑, 화이트 진판델은 물론 식후주인 포트와인, 파티용 샴페인까지 종류대로 갖추고 있다.
그 옆으로는 샌안토니오에서 만든 와인, 그 외 전 세계에서 사온 수백 가지 와인들을 시음해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와인을 사러 들린 길에 시음장에 멈춰 끼안띠, 보르도, 브르고뉴 등 평소에 마셔보고 싶었던 와인들을 코를 깊이 들이밀며 음미해본다.
한 모금씩이라고 겁 없이 잔을 비우면 대 여섯 가지 와인을 시음하고 난 뒤엔 얼굴이 와인 색깔처럼 홍조를 띤다. 이른 시각, 아직 커피도 마시지 않은 속에 들어간 와인으로 인한 취기는 상당히 오래 간다.
와이너리의 입구에는 와인 코르크 따개와 치즈 스프레드, 와인글라스, 와인 병마개 등, 와인 애호가들을 유혹하는 물건과 기념품을 팔고 있다. 매달리나 레스토랑(Maddalena Restaurant)에서는 꽤 맛깔스러운 파스타와 샌드위치를 와인과 더불어 즐길 수 있다.
와인의 황홀한 향기와 아름다운 빛깔을 사랑하는 당신이라면 올 가을, 가까운 와이너리를 찾아 색색의 와인을 시음해보자. 술 익는 마을의 냄새를 맡으며 즐기는 도심 속의 나들이는 생각보다 무척 낭만적이다.


■와인 전문가가 권하는 시음 요령

시음할 때, 술이 약한 사람은 따라주는 대로 모두 마시지 말고 한 두 모금 맛만 본 후 남은 것을 앞에 놓인 통에 쏟아 버리는 것이 좋다. 순서는 화이트 와인을 먼저 한 후, 레드 와인으로 옮겨간다. 와인을 마실 때는 잔을 충분히 흔들어 공기와 결합을 시킨 후 코로 냄새를 충분히 음미하고 입으로 맛을 본다. 이렇게 마신다면 와인 한 잔에 배어있는 농부의 땀방울과 햇살, 비, 대자연의 축복이 온몸 가득 전해져 오지 않을까.


LA인근 와이너리

샌안토니오 와이너리(San Antonio Winery)

와인을 숙성시키는 셀러, 온도가 조정되는 발효 탱크, 수 백 개의 통나무 배럴을 둘러보며 와인 제조 과정에 대한 이해를 돕는 무료 와인 투어를 주말이면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한 시간 간격으로, 주중에는 정오-오후 2시까지 한 시간 간격으로 실시하고 있다. 주7일 오픈.
가는 길 한인 타운에서 101번 프리웨이를 타고 남쪽으로 가다가 Alameda St.에서 내려 북쪽으로 올라간다. North Main St.을 만나 우회전해 가다다 Lamar St.이 나오면 우회전한다.
주소는 737 Lamar St. Los Angeles, CA90031. 투어 예약과 문의는 (323) 223-1401
온라티오 시음장:
주소 Ontario Tasting Room 2802 S. Milliken Ave. Ontario, CA 91761.
전화 (909)947-3995



마리나 델레이의 와이너리 로우(Winery Row)

와인 제조 과정은 볼 수 없지만 프라이빗 와인 레이블링 서비스를 해준다. 전문가가 선별한 와인과 올리브 등 지중해 식 고메이 푸드, 유기농 티의 시음회와 판매도 한다.
주소 13040-5 Mindanao Way Marina del Rey, CA 90292.
전화 (310)578-0056


도나토니 와이너리
(Donatoni Winery)

주소, 10604 S. La Cienega Blvd. Inglewood, CA 90304. 전화, (310) 645-5445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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