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청년신부가 백발이 될 때까지 한국인과 함께 울고 웃은 44년

2005-08-2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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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신부가 백발이 될 때까지 한국인과 함께 울고 웃은 44년

전라도 함평, 제주, 광주, 목포 등에서 사목활동을 펼친 모 안토니 신부. 지금은 성골롬반 외방선교 성소후원회 대표를 맡고 있다.

아일랜드출신 모 안토니 신부 28일 칠순잔치

1960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 평생을 한국과 한인교포 사목을 위해 헌신해 온 아일랜드 출신 신부의 70회 생일을 맞이해 가톨릭 교계가 뜻 깊은 행사를 준비한다.
44년 전 오로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사명만으로 말도 생김새도 다른 한국이라는 낯선 땅에 발을 내딛었던 26세의 청년신부는 이후 한국과 미국에서 한인들과 동고동락하며 복음을 전하는 사목활동을 펼쳐왔다.
1960년 성골롬반 선교회에서 사제서품을 받은 모 안토니 신부(현 성골롬반 외방선교 성소후원회 대표)는 이듬해인 1961년 한국으로 파송돼 1979년까지 전라도 함평, 제주, 광주, 목포 등지에서 복음전파를 위해 힘썼다.
“내가 한국에서 지냈던 기간이 박정희 대통령의 등장과 사라짐의 시기와 일치한다”며 장난스레 입을 연 모 신부는 한국전쟁 후 정치적으로 불안정했던 그야말로 격동의 시기를 한민족과 함께 겪었다고 말한다.
이후 1979년 미국으로 건너와 지난 91년까지 10여년 동안 타운 내 한인성당인 성그레고리 한인천주교회에서 초대신부를 맡으며 한인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천주교신앙의 뿌리를 내리는 거목의 역할을 했다.
30여명의 신자로 조촐히 시작한 성그레고리성당은 현재 한인뿐만 아니라 히스패닉, 그리고 타민족을 포함해 신자 1,500여명에 달하는 최대 규모 교회중 하나로 성장했으며, 증가한 신자수를 포용하기 위해 주변 성당 설립을 촉진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성그레고리성당은 또한 최근 정현철 신부가 LA대교구에서 최초의 한인 본당신부로 임명되는 등 가톨릭계의 모범 성당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모 신부는 미국에서 처음 사목을 시작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에서 20년 동안 생활한지라 한인교회에 적응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막상 미국에 와 부딪혀보니 한국문화와 미국문화가 섞인 이민교회를 이해하고 적응하는 데 적잖은 시행착오을 겪었다”고 회고하며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고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신자들과 유대관계를 돈독히 하는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모 신부는 1세와 2세 화합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며 특히 차세대 지도자인 2세 양육과 훈련에 많은 관심을 두었다. 이것은 현재 모 신부가 성골롬반 외방선교 성소후원회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선교실습체험 프로그램 활동과 맞닿아 있다.
모 신부는 “한국, 그리고 미주 한인교회에서 사목활동을 하며 한국의 문화가 나의 믿음을 굳건히 해주었다”고 재차 강조하며 “다이아몬드가 각각 다른 각도에서 형형색색의 빛을 발하며 가치를 인정받는 것처럼 믿음 역시 여러 문화를 접함으로써 깊은 통찰력을 기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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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안토니 신부 칠순 생일기념 축하미사 및 연회
▲일시 : 8월28일 오후 5시
▲장소 : 래디슨윌셔플라자호텔 3515 Wilshire Blvd. LA
▲문의 : 성골롬반 외방선교 성소후원회 (213) 389-4612

<신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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