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숙희 기자의 주방일기

2005-08-1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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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조미료

사람들과 음식과 건강에 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주제가 인공조미료에 관한 것이다. 무엇보다 식당음식에 화학조미료가 너무 많이 들어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서양음식은 그렇지 않은데 왜 동양음식에는 모두 MSG가 들어가는지 모르겠다고 불평들을 한다.
한식당은 물론이고 중식당, 일식당 등 아시안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 중 인공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곳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아지노모토와 혼다시로 유명한 일본은 MSG의 종주국이고, 중국음식은 ‘중국식당 증후군’(chinese restaurant syndrome) 혹은 ‘MSG 쇼크’란 단어가 있을 정도로 MSG를 많이 사용하며, 월남국수가 MSG 국물이라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당 취재를 할 때면 식당들마다 절대 빼놓지 않고 강조하는 것이 있는데 “화학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무도 분명한 거짓말을 너무도 상투적으로 남발하기 때문에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식당들도 어찌할 수 없다고 호소하는 것이 인공조미료를 넣지 않으면 손님들이 음식 맛이 없다고 불평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입맛은 인공의 맛에 길들여져 있어 순수한 미각을 잃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의 혀는 기본적으로 단맛, 짠맛, 쓴맛, 신맛의 4가지를 느끼도록 되어있다. 그런데 화학조미료는 이 네가지 기본 맛에 속하지 않는 지미성분, 즉 ‘감칠맛’을 느끼게 해주는 것으로 한번 이 맛에 길들이면 미각신경이 둔해져 다음부터는 짜다, 싱겁다, 달다, 맵다, 시다는 순수한 맛에 대해 정확하게 판단하게 하지 못하고 감칠맛만을 찾게 된다고 한다.
인공조미료의 부작용은 미각의 둔화만이 아니다. 보통 사람은 잘 못 느끼지만 화학조미료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금방 신체적인 증상이 나타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두통과 구토, 나른함과 갈증이다. 그 외에도 열이 나거나 목이 뻐근하고, 속이 부글거린다거나 가슴이 조여오고 멀미나는 증세, 어린이에게는 아토피성 피부염과 심지어 뇌손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얼마전 전화를 걸어온 한 독자는 “미원이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6시간 후부터 심한 두통에 시달리는데, 많이 들어간 것을 먹으면 하루 종일 머리가 아프고, 가장 심했던 경우 사흘동안 매사에 의욕을 잃을 정도로 심각한 두통을 앓았다”고 말했다.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한인타운에서 인공조미료를 넣지 않는 식당은 한 군데도 없다고 단언한 그는 할 수 없이 식당에 가야할 때면 생선구이를 시키는데 이면수에도 미원을 뿌려서 굽는 곳이 많기 때문에 꽁치구이만 주문한다고 개탄하였다.
또 다른 독자는 ‘MSG 쇼크’를 일으킨 경험을 이야기했다. 뉴욕의 중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계산을 하는데 온 몸이 뻣뻣해지면서 혀까지 굳어 말이 안 나오더라는 것이다. 자신은 왜 그런지 몰라 당황하고 있는데 식당주인이 보더니 얼른 택시를 불러 태워주면서 운전수에게 “이 사람이 MSG 쇼크를 일으켰으니 병원에 데려다주라”고 하더란다. 그제서야 자신의 증세가 무엇인지 알게됐다는 그녀는 중국식당에서는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모양인지 식당 주인도, 택시 운전수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아주 익숙하게 대처하더라며 몸서리를 쳤다.
우리는 식당에서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인공조미료에서 벗어날 수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나는 미원이나 다시다를 한번도 사본 적이 없지만 MSG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요리를 하기란 쉽지 않다. 사다먹는 간장, 된장, 고추장, 각종 소스, 김치, 밑반찬, 라면, 반가공식품 등에 이미 모두 첨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식당 탓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입맛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마켓에서 식품을 살 때 MSG(Monosodium L-Glutamate) 성분이 있는지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NO MSG’라고 적혀있더라도 그와 비슷한 감칠맛을 내는 대체물질인 IMP, GMP 등을 포함하고 있다면 결국 마찬가지 효과를 낸다고 하니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래도 감칠맛에 길들여진 우리 미각을 담백한 맛을 즐기는 미각으로 바꾸는 노력을 하지 않는 한, MSG의 사용은 절대 없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어쩌면 서양음식에까지 침투해 들어갈 지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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