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르띤의 스페인어 회화와 중남미 문화 산책 ¡Hola! amigo

2005-08-1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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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남미 ABC 3국과 스페인 제국

제375장. 남미편 25. 칠레 2. 태평양전쟁

식민지 시대 이전 칠레의 북부에는 마푸체족이 살고 있었다. 15세기 중반 강력한 국가체제를 갖춘 잉카족의 9대왕 빠차쿠텍이 칠레 북부를 침공하였으나 강력한 마푸체족의 저항으로 더 이상 남진을 포기하여 칠레와 페루의 국경선이 결정 지워졌다. 1532년 페루를 정복한 피자르로와 알마그로의 연합군 중 알마그로군이 칠레 정복에 나섰다. 알마그로는 칠레 지역을 발견하였으나 정복에는 실패하고 페루로 돌아가 피자르로와의 정복 열매를 다투던 중 그에게 살해된다. 1540년 스페인의 페드로 데 발디바아가 칠레 원정대를 이끌고 칠레에 도착하여 산티아고시를 건설하나 후에 인디오와의 전투에서 전사하고 만다.
스페인군은 가장 강력한 인디오 종족이었던 마푸체족과의 전쟁(스페인인들은 그들을 아라우카노족이라고 불렀다)에서 갈수록 전쟁술이 발전해 가는 마푸체족을 제압할 수 없어 19세기말까지 그들을 정복하지 못하였으며 결국 그들과 평화협정을 맺어 그들의 영토를 인정하게 되었다.
1817년 3월 아르헨티나의 산 마르띤 장군과 칠레의 베르나르도 오이긴스가 4,000명의 무장 반군을 이끌고 안데스 산맥을 넘어 차카부코에서 스페인군에게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어 오이긴스가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1879년 칠레 북부의 볼리비아 영토인 안토파가스타 지역에서 광산을 개발하던 칠레 기업들에 대한 볼리비아의 부당한 대우에 대항하여 칠레는 상호 방위조약에 묶여 있는 볼리비아와 페루에 전쟁을 선포하였다. 본국 기업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는 겉으로 내세운 명분이고, 사실은 사막지역에 막대한 초석이 매장되어 있었던 것이 탐이 났던 것이다. 인조 초석이 생산되기 전까지 초석은 다이나마이트의 중요한 원자재여서 주변국 모두 탐을 내고 있었다. 5년간에 걸쳐 일어난 이 전쟁이 바로 태평양전쟁이다. 이 전쟁의 승리로 칠레는 남극을 제외한 칠레 영토의 3분의1에 해당하는 북쪽 사막지대를 영토로 편입했으며, 패전국인 볼리비아는 태평양 연안의 영토를 모두 빼앗기고 내륙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전쟁으로 칠레는 얼마나 큰 성과를 얻었는지, 전후 초석 경기로 번영기에 들어서고 초석 수출자금은 국고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였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칠레는 정정의 불안과, 독일의 인조 초석의 개발로 초석 경기가 끝나감에 따라 경제 침체기에 들어서며, 1924년부터 자주 일어난 군부 쿠데타로 인플레와 고실업률로 고통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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