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범수의 선교하는 삶 ‘행복한 여름’

2005-08-1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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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에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나누며, 응답하신 기도와 거절하신 기도에 관해 서로 간증한다. 이야기는 끝이 없다. 저녁 시간은 짧고 밤이 너무 빨리 온다.


어제까지 내 일생에 가장 행복한 여름을 보냈다. 아프리카 선교사 두 분이 우리 집에서 한 달을 함께 지내셨기 때문이다.
세계 각지, 땅끝에서 모두 백 사십 여분의 선교사가 선교사 대회 참석차 LA에 오셨는데 많은 분들이 교인 가정에서 민박을 하셨다. 이 두 분도 교회의 선교관을 마다하고, 편안한 호텔도 거절한 채 좁고 불편한 우리 집을 숙소로 정하셨다.
우리는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새벽 예배를 드리러 다녔다.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 다른 사람 방문을 두드려 깨워주기로 했는데 한달 동안 아무도 누구를 깨울 일이 없었다.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모두들 다섯 시가 되기 훨씬 전부터 일어났으니까.
새벽에 만나는 여러 선교사들은 전날 밤까지 이어진 바쁜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피곤한 기색이 전혀 없다. 모두가 은혜로 얼굴이 환하다. 하루의 시작이 기쁘다.
예배 후엔 집으로 돌아와 차를 마신다. 하루의 스케줄을 말하고 서로에게 도움을 줄 일이 무엇인가 살핀다. 아프리카에 남겨두고 온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어려운 지역에서 사역하시는 다른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한다. 우리 가족을 위한 축복기도가 이어지고 아프리카 사역지를 위해 중보기도하시는 후원자들을 위해 기도한다.
두 분은 초청 받은 교회의 집회 설교 준비를 위해 각자 방으로 가거나 도서관과 서점을 찾기도 하고 시간을 쪼개어 환자를 심방하고, 간증을 하러 다니고, 선교지 사역보고를 하고, 고통 중에 있는 성도를 찾아가 상담을 하고, 몸으로 도울 일들을 찾아 바쁘게 일한다.
오피스에서 일하는 내 손길은 가볍다. 선교사와 그 가족들을 다른 치과의사들과 나누어 진료하는 즐거움 때문이다. 그분들의 치아건강은 엉망이다. 건강을 돌보지 않고 일한 증거다. 주님을 만나기 전, 내가 얻은 육신의 쾌락은 영혼을 만족시킬 수 없었는데, 이제 영혼에 얻은 기쁨은 영과 육에 충족한 평안을 준다.
오후 진료를 마치고 발걸음도 가볍게 집으로 온다. 어느덧 저녁 시간. 상 위에 가득 펼쳐진 음식을 보며 선교사님은 선뜻 수저를 들지 않는다. “아프리카에 사는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해서요”라고 말한다. 이튿날부터 좀 더 검소한 식탁을 차린다.
두 분은 사역지의 열악한 환경과 과로 탓에 몸이 많이 약해져 있다. 게다가 허리에 생긴 디스크로 의자에 오래 앉아있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가시에서도 감사를 찾으며 늘 웃는 얼굴이다. 오늘 하루에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나누며, 응답하신 기도와 거절하신 기도에 관해 서로 간증한다. 이야기는 끝이 없다. 저녁 시간은 짧고 밤이 너무 빨리 온다.
“이제 그만 쉬어야지요. 내일 새벽에 또 만납시다.” 아쉬운 마음으로 굿 나잇을 하고 우리는 각자 방으로 돌아간다.
한분은 에티오피아 국경 회교권 지역에 크리스천 학교를 세우고 있다. 폭탄이 터지고 부족 간에 살상이 끊이지 않는 위험한 곳이다.
또 한분은 케냐 현지인 목회자를 양성하고 있다. 여기저기 세미나를 인도하러 길도 없는 산을 넘어 계곡을 지난다. 허리가 다 나으면 이 산 꼭대기에서 행글라이딩을 해보면 좋겠다. 하늘에서 내려다보이는,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에 복음이 전해지는 비전이 이 분의 심장에 있다.
이분들이 어제 사역지로 돌아갔다. 집이 텅 비었다. 혼자 받는 저녁상은 쓸쓸하고 소음과 같은 세상의 밤은 길다. 내가 누렸던 이 여름의 행복을 세상은 알까?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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