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문화는 하나님의 선물”

2005-08-1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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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하나님의 선물”

헬렌 리 박사가 초대교회 시절 크리스천들의 정체성 정립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초기 기독교 문학…’ 펴낸 헬렌 리 교수

교회-대중 문화 서로 나누는 모습
2000년전이나 지금이나 차이없어
세상 사람과 교회 거리 멀어지게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갈수록 두드러지고 있지만 아직도 여성들에게 철벽같이 높고 두꺼운 담을 쌓고 있는 분야가 있다.
교회와 신학이 그 분야로,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교회와 신학교에는 여자 목사와 여자 교수의 비율이 다른 분야의 여성 지도자 비율과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낮다. 교회에서 여성의 역할을 크게 제한한 바울의 몇 마디로 인하여, 지금껏 초대교회시대의 문화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기독교계를 바라보는 논란은 여기서 접어두기로 하자.
다만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제 33세의 한인여성 헬렌 리씨가 풀러신학교 박사과정을 마치자마자 샌타바바라의 웨스트몬트(Westmont) 대학 종교학과 교수가 되었고, 초대교회에 관하여 그녀가 쓴 박사논문이 영국 굴지의 출판사 루틀리지(Routledge)에서 단행본으로 출판된 일은 이례적일 뿐만 아니라 전례 없는 일이라고 보아도 무리 없을 것이다.
“신학분야에는 여자가 거의 없습니다. 미국여성도 마찬가지죠. 또한 졸업논문이 논문집 형태가 아니라 초대교회신학 서적 시리즈의 한 권으로 출판된 것도 매우 드문 일이어서 교수님들조차 깜짝 놀라고 기뻐해주셨습니다. 역사관이 없으면 미래관도 없는 것이므로, 차세대 신학을 이끌어갈 학생들에게 기독교 역사를 가르치는 일에 헌신할 계획입니다”
초대교회사에 관한 그녀의 논문 ‘초기 기독교 문학: 2세기와 3세기의 그리스도와 문화’(Early Christian Literature: Christ and Culture in the Second and Third Centuries)는 로마제국의 지배하에 박해받으며 살았던 초기 크리스천들이 세속적인 그레코로만 문화 속에서 소수의 기독교 문화를 어떻게 비교하고 접목시키며 정립시켰는지를 종교적, 정치적, 성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다. 헬렌 리 박사는 서기 150년부터 225년 사이에 꽃피웠던 세가지 크리스천 문학장르, 변증문학(Apology), 사도행전 외경(Apocryphal Acts), 그리고 순교자 행전(Martyr Acts)의 연구를 통해 이 논문을 작성했다.
“당시 지식층에서 유행했던 변증문학은 전통 철학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기독교 유일신 사상의 우월함을 부각시키고 있는 반면, 사도행전은 로마 문화와 기독교 문화는 절대 섞일 수 없는 것으로 정면대립하고 있습니다. 그런 한편 순교자 행전은 기독교가 로마 문화보다 우월함을 주장하지만 대립하지 않고 그러한 기독교 문화가 로마제국을 더 풍요롭고 번창하게 한다고 포용하고 있지요. 이러한 문화적 투쟁들이 배경이 되어 312년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라고 봅니다”
그녀의 연구내용은 현대에도 해당된다. ‘교회문화’와 ‘세상문화’를 양분화하고 대립시키는 교회들의 모습이 2,000년전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와 교회문화를 이분화 시키는 단순한 사고방식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교회가 가깝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문화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지요. 문화에 대해 연구할수록 여러 문화 속에 구원되어야할 면들이 있음을 보게됩니다”
헬렌 리씨는 고2때 쓰러져 병원에 입원, 생사의 기로에서 선 적이 있는데 그때 간절한 기도로 하나님이 고쳐주셨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고 당시 기도해주었던 송명희 시인의 권유로 신학공부에 뜻을 두게 되었다고 한다. 17세이던 89년 도미, UC버클리에서 유럽 역사를 전공했으며 풀러에서 목회학 석사, 교회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작년 가을부터 웨스트몬트 대학 부교수로 재직중인 리 박사는 부에나 팍의 하나교회(담임 박종기 목사)에서 4년간 영어목회, 2년간 한어부 성인 제자훈련에 헌신하기도 했다.
지난 7일 하나교회에서 ‘초기 기독교 문학: 2세기와 3세기의 그리스도와 문화’ 출판기념회를 가진 리 박사는 오는 12월 ‘여성 순교자들의 영성’(Spirituality of Female Martyrs: Virginity and Spiritual Motherhood)이란 제목의 연구논문도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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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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