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영적 하품이 필요할 때

2005-08-1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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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품은 왜 하는 것일까? 왜 사람들이 갑자기 입을 딱 벌리고 크게 숨을 들이쉰 뒤 한숨을 내쉴까? 흔히 지루하거나 할 일이 없을 때 하품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라고 한다. 기네스북에 의하면 1888년 15세의 소녀가 5주일 동안 계속 하품을 한 것이 세계기록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오랫동안 하품을 한 이유는 호흡기에 장애가 있었기 때문이다.
호흡기에 문제가 있어 산소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거나, 너무나 피곤하여 한꺼번에 대량의 산소가 필요할 경우, 반사적으로 그것을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든 시스템이 하품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하품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우리 몸에 산소를 충분히 공급해서 몸의 기능을 빠른 시간 내에 정상화하기 위한 특별 시스템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하품이 필요할 때가 있다. 하나님을 향한 영적 호흡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이다. 마치 호흡기에 장애가 있으면 원활한 산소공급이 안 되어 답답한 것처럼, 우리의 심령에도 막힌 것이 있으면 만사가 귀찮아지고, 피곤함을 느끼게 된다. 기쁨도 사라지고 의욕도 상실된다. 그때 막힌 것을 뚫어주고, 신령한 산소를 대량 공급해 주는 것이 영적 하품이다.
하품을 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목청이 들여다보이도록 적나라하게 할 수도 있고, 양팔을 들고 기지개 켜듯 하품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하품할 때마다 괴성을 지르기도 한다. 방법이 어떠하건 중요한 것은 가슴에 맺힌 것이 뚫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품 뒤에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훔치는 것도 잊어서 안될 항목이다.
필자는 최근에 하품하러 혼자 교회당을 찾는 날들이 많다. 품위는 없어 보이지만 하나님을 향해 괴성도 지르고, 혼자 눈물을 훔치고 싶어서이다. 몇 시간씩 그러고 나면 왠지 마음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낀다. 하품의 역학이 가져다주는 카타르시스 때문일까? 아니면 뚫린 가슴을 통해 흐르는 신령한 생명력 때문일까? 어쨌든 요즈음은 하품하는 것이 창피하지 않다.
무더운 여름철이라 그런지, 교회 내에도 하품하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더 많이 눈에 뛴다. 삶이 지루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막힌 것들이 많아서 그런 것이다. 그러므로, 설사 그들이 신성한 예배 시간에 하품을 한다 해도 책하지 말자. 하품은 더 신선한 공기를 갈망하는 정직한 몸짓인지도 모른다.


박 성 근 목사
(로스앤젤스
한인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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