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떤 음식이든 ‘보증수표’

2005-08-1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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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당 가이드
‘안젤리니 오스테리아’

각 지방 특산물 이용 맛깔스러워
3년전 오픈… 예약하기 힘든 식당으로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뒤에 자주 붙는 명사로는 파스타 전문점인 트라토리아, 피자 전문점인 피자리아, 여인숙에 딸린 식당 로깐다, 와인 바인 에노테까, 업 스케일 식당 리스또란떼 등이 있다. 안젤리니(Angelini)의 뒤에 따르는 명사는 이 중 어느 것도 아닌 오스테리아(Osteria).
이탈리아 교외의 작은 마을에는 으레 오스테리아가 있었다. 광장, 교회와 함께 오스테리아는 만남의 장소다. 부자와 가난한 자, 문화인과 자연인이 자리를 함께 하며 대화를 나누는 곳, 한가로이 와인 한 잔을 놓고 카드놀이를 즐기는 마음 편하고 부담 없는 장소가 바로 오스테리아였다.
다른 남자 만나 줄행랑 친 옛 애인을 잊지 못하는 젊은이는 오스테리아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인생의 쓴맛을 위로 받았다.
이러한 오스테리아의 오랜 전통은 이탈리아가 현대화되기 바로 전까지 존재해왔다. 학자였던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와인을 마시며 오스테리아에서 보내는 한가로운 저녁시간을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겼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은 이런 오스테리아의 아름다운 전통을 바 (Bar)로 대치해 버렸다. 바와 오스테리아의 가장 큰 차이는 아마도 느림의 미학과 인스턴트적 스피드의 대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이탈리아인들 사이에서는 고전적 의미의 오스테리아에 대한 향수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와인 생산의 발전과 때를 같이 해 오스테리아는 하나 둘 늘어갔다. 오스테리아에서 만날 수 있는 부류는 삶과 좋은 음식, 좋은 와인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이들.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이들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도 금시 십년지기처럼 대화를 나눈다.
오스테리아에는 그 지방의 특산물을 이용한 맛깔스런 먹거리와 셀 수도 없을 만큼 다양한 와인이 가득하다. 시골풍의 이탈리아 음식을 먹으며 한 병을 다 주문하지 않고도 특정 지방의 와인을 마실 수 있는 오스테리아의 전통은 안젤리니 오스테리아에서도 그대로 발견된다.
LA 최고의 이탈리아 식당이라 꼽히는 렉스 일 리스또란떼와 빈첸띠의 셰프였던 지노 안젤리니(Gino Angelini)는 3년 전 안젤리니 오스테리아를 오픈했다. 보통 새로운 식당을 오픈할 경우 경영이 괘도에 오르기까지 적어도 6개월 정도는 고전을 면치 못한다. 그런데 이변이 발생했다. 안젤리니 오스테리아는 오픈과 동시에 가장 예약을 따내기가 힘든 레스토랑으로 꼽힌 것이다.
아담한 크기의 안젤리니는 인테리어에 그다지 들인 게 없어 보인다. 연인과 꼭 가고 싶은 로맨틱한 레스토랑, 뭐 이런 종류는 아니란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젤리니에는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맛보게 해주고 싶어하는 존재들이니까.
정통 이탈리아 요리를 즐길 수 있는 곳답게 메뉴는 안티파스티, 프리미, 세콘디 등으로 분류를 했다. 여러 차례 들러가며 한 가지씩 다 시식해 봐도 후회 없을 만큼 음식 맛은 보증수표다. 그 가운데 가장 추천하고 싶은 메뉴 몇 가지만 언급한다.
고곤졸라 치즈와 사바소스를 곁들인 무화과 그라탕(Fresh Figs Gratin)은 아름답고 관능적인 무화과를 이용한 정말 괜찮은 전채 요리. 복숭아를 곁들인 랍스터 샐러드(Lobster with Peach and Mixed Green Salad) 역시 복숭아의 농염한 향기가 랍스터의 쫄깃한 육질과 기막히게 어울린다.
새우, 체리 토마토, 시금치로 맛을 낸 트로피에 파스타(Trofie alla Riviera)와 해물 리조또(Risotto with Mixed Seafood Ragu) 역시 이탈리아 행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향유할 수 있는 기쁨이다.
가장 추천하고 싶은 메뉴는 피렌체 스타일의 비프스테이크(Grilled Bistecca alla Fiorentina). 뽄떼 베끼오를 건너 골목길을 한참 걸어 들어갔던 유서 깊은 스테이크 전문 리스또란떼의 스테이크와 거의 다를 바가 없는 훌륭한 맛이다. 길 건너 엘 코요테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끼안띠 한 병을 다 비우고 싶지 않다면 미리 미리 예약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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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를 곁들인 랍스터 샐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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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곤졸라 치즈·사바소스 무화과 그라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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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와 부라타 샐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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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피에 리비에라 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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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해물로 맛을 낸 리조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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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체 스타일 스테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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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스타일의 가재미 요리.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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