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환경오염 “NO” 그릇 설거지 “NO” 포크·스푼 “NO”

2005-08-1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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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접시 바나나 잎사귀에 담아
손으로 음식먹는 색다른 체험 어때요

파머스 마켓 ‘싱가포르 바나나 리프’
인도등 동남아시아식 식사법으로 인기

음식을 담는 그릇과 떠먹는 식기는 때로 음식 그 자체보다 더한 의미를 지닌다. 인류 역사와 함께 해온 토기, 철기 등 식기가 없었다면 전 세계 뮤지엄의 그 수많은 공간은 도대체 어떤 유물들로 채워졌을까.
리델 크리스털 잔에 따른 와인은 이를 담고 있는 형상의 럭서리함 때문에 내용물마저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느낌이다. 레녹스 차이나에 담긴 음식 역시 마찬가지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란 말은 식생활에서 역시 예외 없이 적용되는 법칙이다.
한국의 전위 예술가이자 명상가인 홍신자씨의 책에서 읽은 구절이다.
인도 뿌나의 아쉬람에서 라즈니쉬의 제자로 오랜 세월 동안 구도생활을 하던 그녀는 인도인들의 자연친화적 식탁을 아주 마음에 들어했다.
물론 그릇을 종류대로 갖출 만큼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아서이기도 하겠지만 인도에서 현지인들과 식사를 할 때 그녀는 바나나 잎사귀에다 음식을 조금씩 덜어먹는 천연 접시를 자주 사용했다고 한다. 인도인들은 포크나 스푼 같은 식기 역시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오물조물 음식을 모아 입으로 가져간다.
현지인들의 식생활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은 그들과 동화되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처음엔 물컹한 음식물들이 손가락 끝에 와닿는 느낌이 그리 상쾌하지 않아도 자꾸 해보면 후각, 시각, 미각에 이어 손끝에 와 닿는 촉각이야말로 음식을 제대로 즐기는 가장 중요한 감각임을 깨닫게 된다.
인도 대륙의 남쪽 께랄라 지방의 한 리조트에서 머물던 어느 해 여름, 하루는 리조트 측에서 바나나 잎사귀에 음식을 담아 손으로 식사를 하는 현지 스타일의 밤 행사를 마련했다. 이제껏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경험은 아주 새로웠다.
바나나 잎사귀 접시에 음식을 담아 손으로 먹고 난 후에는 잎사귀를 버리고 손만 씻으면 되지 합성세제 퐁퐁 풀어 수세미 박박 문대며 설거지를 할 일이 없어 좋다. 합성 세제를 사용하지 않으니 지구 환경 보호는 자동적인 결과다.
한번 쓰고 버린다는 점에서 바나나 잎사귀 접시는 일회용 플래스틱 용기와 비교될 수 있겠다. 하지만 플래스틱 용기가 썩지 않고 그대로 남아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반면 바나나 잎사귀는 바로 썩어 비료가 되니 얼마나 자연친화적인가.
바나나 잎사귀 접시를 사용하는 나라는 인도뿐만이 아니라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에서도 역시 바나나 잎사귀 접시를 사용한다. 싱가포르에 단기 선교를 떠났던 이들은 그 곳에서의 식사 체험에 대해 눈을 반짝이며 얘기한다.
“항상 먹는 얘기만 하는 것 같은데 이번엔 정말 색다른 체험이었어요. 바나나 잎사귀를 길게 깔고 그 위에 밥과 생선, 토마토를 죽 늘어놓고 적당히 쭈그리고 앉아서 원주민들처럼 손으로 식사를 한 거예요. 그렇게 해서 약 40명 정도의 인원이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릇도, 수저도 필요 없었고 하나님이 주신 도구를 100퍼센트 활용 한 거죠. 너무나 맛있었고, 재미있었고, 귀한 경험이었습니다”
튀니지인 친구인 셰들리 랑레즈는 집에 사람을 초대해 놓고 항상 포크와 나이프 놓는 것을 잊는다. “셰들리, 포크 좀 줘” 해도 “잠깐만” 해놓고 곧 잊어버린 그는 손가락과 빵을 이용해 혼자 식사를 계속하며 “맛있지?” 하고 물어온다. 튀니지는 아프리카 북부인 마그레브 지방의 나라. 마그레브뿐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 전체가 그리고 중동 지역 등 지구상의 참 많은 곳에서는 식기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음식 먹기를 즐기는 것 같다.
최근 3가와 페어팩스 코너의 파머스 마켓을 거닐다가 다시 한번 바나나 잎사귀 접시에다 음식을 담아 식사하는 이들을 만났다. 3년 전 문을 연 싱가포르 바나나 리프(Singapore’s Banana Leaf, 전화 323-933-4627)라는 레스토랑에서 동남아시아의 간단한 먹거리를 바나나 잎사귀에 담아 서브하는 것이었다. 짙은 녹색 잎사귀에 얹은 카레의 노란색은 아주 고운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파머스 마켓 내 푸드 코트의 대다수 레스토랑들은 플래스틱 접시를 사용하고 있어요. 이 곳의 다른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마다 이 환경 쓰레기를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았어요. 싱가포르 바나나 리프에 올 때면 그런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어 좋아요. 이런 식사법은 우리 인류 모두가 앞장서야 할 가장 쉬운 환경운동 가운데 하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파머스 마켓에서 만난 지구인, 제이미 그래함(45, 마케팅)의 말이다.
물론 우리들의 식생활에서 예쁜 접시와 식기를 모두 없앤다는 건 무리한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환경에 대한 인식을 갖고 스님들이 절에서 발우공양 하는 것처럼 음식 쓰레기를 줄이고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깨끗이 먹는다면 우리들의 지구는 지금보다 훨씬 건강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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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머스 마켓 푸드 코트에서 한 남성이 바나나 잎에 담긴 음식을 먹고 있다.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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