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개척교회

2005-08-0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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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에 아버님은 교회를 개척하셨다. 아버님은 원래 직업군인이셨는데, 예편을 하면서 신학공부를 하셨고, 결국 목사 안수를 받고 목회를 시작하게된 것이었다.
나는 연대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교육전도사가 되어 사역을 도왔다. 일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성가대 지휘도 하고, 중고등부 전도사도 하고, 저녁예배 설교도 하고, 교회 봉고버스 운전도 하고, 청소도 했다. 북치고, 장구치고, 필요에 따라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야 했다. 고등학교를 다니던 여동생도, 피아노 반주며, 아동부 교사며 할 수 있는 대로 아버님을 도왔다.
아버님도 첫 사역이었고, 나도 첫 사역이었다. 재미있었다. 특별히 내가 가르치던 중고등부에는 학교에서 공부 못하는 문제학생들이 여럿 있었다. 나도 학창시절 공부 못해본 경험이 있기에, 오히려 그 아이들에게 정이 갔고, 교회에 모아 놓고는 불법과외를 무상으로 하기도 했다. 라면을 끓여 먹여가면서, 때로는 야단을 치면서, 함께 기도하고 울면서 씨름을 했다. 그 아이들 중에 지금은 몇이 목사가 되었다. 목회라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경험했다.
아내가 7학년이 되었을 때에, 장인께서는 교회를 개척하셨다. 장인께서는 원래 시립교향악단과 문화방송에서 트럼펫을 연주하셨는데, 공부를 위해 미국에 왔다가 영주권 없이 겪어야 하는 당시의 웬만한 이민자들의 아픔을 다 경험해야 했다. 후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목사가 되어 목회를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그것도, 한인이 많지도 않고, 삶의 환경이 너무나 열악한 도시, 라스베가스에서 교회를 개척하셨다.
아내는 어린 나이였지만, 피아노 반주로 예배를 도왔고, 어린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쳐야 했다. 조금 커서는 한글학교를 위해 교회 밴을 운전해야 했고, 토요일 저녁이면, 온 식구들이 함께 교회 구석구석을 청소했다. 다음 날 그 자리에 와서 앉아 예배드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며 걸레로 의자를 닦아냈다. 그 교회는 지금도 숨이 막힐 듯한 사막의 한 가운데 서 있지만, 아내에게는 행복한 기억이 가득 담겨있는 요람과도 같은 곳이다. 25년의 한결 같은 사역에 지금은 대형교회로 건강하게 성장했고, 오랜만에 흩어졌던 식구들이 모이면, 쥐가 뛰어다니고, 녹물이 나오던 사택에서 고생하며 목회하던 옛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렇게 우리 부부는 한국교회와 미국 이민교회라는 차이는 있지만, 개척교회의 경험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하나님은 우리 가정을 늘 좋은 교회로 인도해 주셨다. 나는 이곳에서 학위를 마친 후, 목사 안수를 받고 감사하게도, 한인교회로서는 꽤 큰 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겼고, 역사가 100년이 넘는 백인교회에서 담임으로 섬기기도 했고, 한인교회로는 작지 않은 안정된 교회에 부임하여 큰 부흥을 경험하기도 했다. 아내와 나는 목회를 통해 많은 사랑과 축복을 받았다. 그래서, 서로에게 그렇게 이야기 해주었다. 아마도 부모님이 개척교회 목회를 하면서 많은 고생을 하셨고, 개척교회 사역의 어려움을 우리도 많이 겪었기에, 하나님께서 특별히 덤으로 은혜를 주시는 것임에 틀림없다고.
따라서, 아내와 나는 개척교회를 섬기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은 매우 강권적인 방법으로 통하여, 우리로 개척교회를 시작하게 하셨다. 최근에 한인들이 급증하고 있는 랜초 쿠카몽가 지역에 새로운 교회를 탄생케 하시고, 새로운 비전과 꿈을 안고 새로운 사역을 하도록 인도하셨다.
새로운 사역이 시작되자 우리 아이들도 바빠졌다. 큰 아이는 아동부 찬양팀으로, 율동인도로, 때로는 유치부 아이들을 돌보는 보조교사로 땀을 흘린다. 작은아이는 유치부 보이들이 대부가 되어, 엄마들에게 한 숨 돌릴 수 있는 틈을 제공하기도 한다. 주일 아침, 이것저것 챙겨가야 할 것이 많을 때면, 아이들의 손이 얼마나 귀한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저 감사할 뿐이다. 큰 교회 담임목사의 자녀로서, 철 따라 거저 주는 선물과 귀공자 대접에 익숙지는 것 보다 오히려 필요에 따라 섬기는 것이 몸에 밸 수 있는 삶의 환경이 주어졌다는 것은 분명 우리 아이들에게 큰복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에게 너무나 귀하고 가치 있는 기회를 주게 되었다는 것이 한편 가슴 뿌듯하기만 하다. 언젠가, 옛 이야기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행복을 나누게 될 것을 확신하기에.

김동현 <뉴-비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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