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숙희 기자의 주방일기

2005-08-0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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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 샤워

지난 금요일 점심 때 우리 편집국 여기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7월말로 출산 휴가에 들어가는 경제부 김수현 기자를 위해 마련한 ‘베이비 샤워 런치’였다.
1년차 신참으로부터 편집국 최고참인 주필에 이르기까지, 한데 모이고 보니 11명이었는데 휴가다 취재다 하여 2명이 빠졌으므로 여기자는 총 13명인 것으로 집계 되었다. 신기한 것은 매일 한 사무실에서 만나 일하면서도 여기자가 몇 명인지 누가 세어본 적도 없고 한자리에 모여본 적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베이비 샤워라는 행사 자체도 처음이었으니 실로 특별한 모임이었다고 하겠다.
편집국에서 여기자가 출산하는 일은 10여년만에 처음이었거니와 이날의 주인공 김수현 기자가 사회부 구성훈 기자와 사내 결혼한 커플이었기에 베이비 샤워를 베푸는 우리의 마음도 조금 남달랐던 것이 사실이다.
젊은 기자들이 많이 들어오는 신문사 편집국엔 어느 때나 처녀총각이 많지만 그 중에서 사내 커플이 탄생하는 일은 매우 드물기 때문에 구성훈·김수현 커플의 결혼은 한동안 화제의 대상이었다. 그런 두사람이 결혼 3년여만에 한국일보의 정기를 듬뿍 받은 아기를 출산하게 되었으니 어찌 감회가 새롭지 않겠는가.
점심 식사후 다 함께 풀러본 선물들은 앙증맞기 짝이 없는 배내옷, 아기담요, 램프, 기저귀 가방, 아기방 장식품, 모유수유에 필요한 비품 등 다양했다. 아기를 한번도 낳아본 적이 없는 싱글 여기자들은 예쁜 아기용품들을 보며 한숨 내지 신음 비슷한 소리를 내기도 했으니, 몇 년내 또 다른 베이비 샤워들이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 오가기도 하였다. 김수현 기자는 답례로 우리에게 향기로운 비누를 하나씩 선물하였고 다 끝난 후 즉석 기념촬영까지 있었던 화기애애한 모임이었다.
우리는 그저 간단하게 선물을 주고 받고 식사하고 대화하며 간단하게 마쳤지만, 원래 베이비 샤워는 미국 여성들에게 대단히 크고 중요한 행사다. 여자들만의 축하파티인 브라이덜 샤워와 베이비 샤워는 가까운 친구들이 주선하는 것이 상례로, 파티의 주제를 정하여 실내장식을 꾸미고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며 다같이 여러 가지 게임을 하면서 몇시간 동안 즐겁게 노는 파티다.
나는 오래전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이태리계 미국인과 결혼한 덕분에 미국식 브라이덜 샤워와 베이비 샤워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선물 하나 들고 별 생각 없이 갔다가 얼마나 감명 받았는지 모른다. 신랑의 누나와 어머니, 그러니까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정성껏 준비하여 열어준 두 번의 파티는 정말 재미있기도 했지만 함께 게임 했던 즐거운 순간들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행사였다.
베이비 샤워에서 했던 놀이를 간단하게 소개해보자. 임신부를 사람들 앞에 몇초동안 세워놓고 잔뜩 부른 배의 사이즈를 눈으로 가늠하게 한다. 그 다음 임신부가 사라지면 사람들은 주어진 실타래에서 임신부의 허리 사이즈라고 생각되는 만큼 실을 잘라낸다. 이중 실제 임신부의 배 둘레와 가장 근접한 사이즈를 자른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또 다른 게임은 이유식 거버(Gerber) 베이비푸드를 이용한 놀이다. 레이블을 모두 떼어낸 베이비푸드 병이 10여개 등장하면 그 색깔만 보고 내용물이 무엇인지 알아맞추는 것이다. 사과, 복숭아, 바나나, 배, 당근, 자두, 호박, 콩, 시금치 등 평소에 주의깊게 보지 않았던 과일야채 이유식의 색깔이 새롭게 느껴지던 놀이였다.
마지막으로 각종 아기용품이 가득 담긴 큼직한 아기욕조가 등장하였다. 우유병으로부터 젖꼭지, 빗, 아기연고, 샴푸, 장난감, 체온계, 큐팁 등 별별 것이 가득 들어있는 플라스틱 욕조를 다같이 10초 가량 들여다본 후 욕조를 치우면 각자 종이에 자기가 본 것을 기억나는 대로 적어서 가장 많이 맞춘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었다.
게임이라는게 괜히 사람을 흥분시키는 법, 별 것 아닌 놀이인데도 승부욕에 목숨거는 사람들도 보게 되고 푸짐한 선물도 챙겨왔던, 정말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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