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강도를 당했다

2005-07-30 (토)
크게 작게
지난 7월9일 밤에 나는 엄청난 일을 당했다. 아직은 떠올리는 것조차 힘에 겨운데 그래도 두려운 기억을 더듬어서라도 이 글을 쓰려고 하는 이유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만이라도 조심해서 나 같은 피해를 당하지 말도록 하자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엄청난 일이란 다름 아닌 강도를 당한 일이다. 토요일, 가게문을 닫고 친구가 찾아와서 저녁을 먹고 보통 다른 날보다는 귀가 길이 늦었었다.
강도를 만난 곳은 길거리도 가게도 아닌 우리 집 엘리베이터 앞에서였다. 참고적으로 내 가게는 코리아타운에 있고 집은 가게에서 25마일쯤 떨어져 있는 밸리, 더 정확히는 노스리지이다. 이 동네에서 나는 10년을 넘게 살았고, 지난해 살던 집을 팔고 지금 아파트로 옮긴 지는 1년이 되었다. 나는 한번도 내가 사는 곳이 위험하다고는 생각을 안 했었고 그 방심이 사고를 당한 첫번째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흔히들 강도의 표적이 되는 조건이 좋은 차, 비싼 옷, 귀금속 등을 하고 또 현찰이 많이 움직이는 비즈니스를 할 때 위험요소가 많다고 하는데, 나는 그 요소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나는 도요타 캠리를 탔고 청바지에 평범한 블라우스를 입었으며 액서세리라고는 손목에 찬, 그것도 어디서 기념품으로 준 시계밖에 없었다.
아무튼, 아파트 주차장(물론 게이트가 있는 곳이다) 안으로 들어와서는 차를 주차하고 김치 담그려고 산 배추와 도서관에서 빌린 책 등을 들고는 아파트 입주자들만이 통과할 수 있는 현관 앞에서 키를 열려고 하는데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순간 뭔가 섬뜩했다. 그러나 차마 뒤를 돌아보면 꼭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아서 “당황하지 말자, 얼른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되니까…”라고 침착하려고 애썼다.
그때 내가 서너 발자국 지나쳐온 덤스터(쓰레기통)에서 또다시 소리가 났다. “아! 누가 쓰레기를 버리러 왔나? 그래도 빨리 들어가야지” 여러 개 매달린 열쇠 꾸러미 중에서 현관 키를 찾아서 열고, 드디어 현관 안으로 들어와서는 바로 2미터쯤 떨어져 있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그때 덤스터와 연결된 트래시 룸에서 또다시 소리가 났다. 불안해진 나는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기만 초조하게 기다리고 드디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갑자기 안으로 연결된 트래시룸 문이 확 열리더니 체구가 커다란 흑인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아, 강도구나. 멀쩡한 사람이라면 왜 쓰레기를 쌓아두는 그 곳에서 나온단 말인가. 더더군다나 한여름에 후드 달린 옷으로 머리를 다 감춘 채 얼굴만 내놓고…”
바로 지척, 그야말로 두어 발자국 떨어져 있던 그 흑인이 내 쪽으로 다가오는데, “내가 당하는구나. 이렇게, 이렇게 내가 당하는구나…” 그 순간 나는 성폭행이 먼저 떠올랐고, 그때 내가 느낀 공포감은 어떻게도 설명할 수가 없다.
들고 있던 배추봉투를 엘리베이터 문에 떨어뜨리고 이내 나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밀쳐져서 한 귀퉁이에 쓰러뜨려졌다. 내 왼쪽 어깨에 걸려 있던 가방은 엘리베이터 다른 한 귀퉁이에 떨어지고 그 다음은 얼떨결에 내 입에서 나오는 외마디 소리. 그저 아~ 아~. 소리치지 말라며 내 이마를 때렸는데 이내 눈으로 피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다음엔 입을 막고 얼굴 어딘가를 또 때리고…
그때 가방 안에 있는 돈이 생각났다. 전날 은행에 일주일치 매상을 디파짓하려다 바빠서 은행에 못 가고 그래서 그 때까지 가방에 들어 있던 그 돈이 생각났다. 참 이상했다. 어떻게 그 상황에서도 돈이 아깝던지…
신문에서 가끔 강도 당한 사람이 돈을 안 뺏기려다 더 큰 사고를 당한다는 내용을 읽었을 때는 그까짓 돈이 목숨보다 중할까 했었는데, 그런데 그 상황에서도, 강도한테 얻어맞아서 이마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데도 나는 솔직히 일주일간 일해서 만든 그 돈이 너무나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내 가방을 훔쳐 가는데도, 두려움과 공포로 나는 발버둥 한번 못 쳤는데 그 강도는 나를 때리고, 내 이마는 찢어져서 흉이 남을 것 같다.
18년을 미국에서 살았다. 강도한테 당하는 것은 솔직히 남의 일인 줄로만 알았었다. 단언하건대 안전한 곳은 아무 곳도 없다는 게 지금에서의 내 생각이다.
그리고 사고는 정말 한 순간, 아주 짧은 순간에 일어난다는 것을 나는 이번에 확실히 절감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사고는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한테나, 닥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정말,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