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름다운 스카이 파일럿

2005-07-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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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이 밝아오는 산길을 걷다 졸졸 흐르는 물을 건너 바위 모퉁이에 기대서서 수려한 능선위로 엷은 오렌지 빛의 아침 노을이 물들어 오고 있는 황홀한 모습을 이른 새벽 시에라 네바다 남쪽 산맥에 우뚝 솟은 마운틴 위트니(1만4,495피트)에서 봤다.
어렵게 일터를 빠져나와 몇 시간을 달려왔고 저녁 내내 모기들과 세찬 폭포소리, 그리고 딱딱하고 비스듬한 잠자리에서 깊은 잠 한번 못 이루고 주위를 분간할 수 없이 캄캄한 새벽에 일어나 정상을 향해 출발했던 것이 한층 다행스럽게 생각되는 순간이었다. 마라톤뿐만 아니라 철인 대회에도 여러번 나가 느꼈었지만 이번 처음으로 올라간 위트니 산은 힘도 들었고 산소의 부족으로 숨이 차 고통스러웠어도 끈질긴 인내로 걷고 달리며 미국 본토에서 가장 높은 정상을 정복해냈다는 또 다른 기쁨과 감격을 맛보았다.
산 아래에 있을 때는 나무들도 울창하고 물도 많이 흐르며 숨쉬기도 편했지만 점점 위로 오를 수록 모든 것이 적어지고 산소마저 희박해져 사람들은 고소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위트니 산의 분수령이라고 할 수 있는 1만2,000피트 이상을 오르니 화분을 갖다 놓은 것처럼 화사한 보라색 꽃들이 지그재그의 아흔아홉 고개 돌 틈 사이에 드문드문 피어 있었다. 고산지대에서만 자라며 영하의 눈보라 치는 추운 겨울을 끈질기게 견디어 이겨낸 스카이 파일럿(Sky Pilot)이라는 이름의 꽃은 바위와 돌 틈 사이에서 피어나 아름다움과 향기로 힘들고 지친 등산객들에게 기쁨과 위로를 주었다.
그 꽃을 보면서 나도 남들이 좋아지는 일에 나의 수고도 섞여 있기를 바라고 그런 사실에 기쁘다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갖게 되기를 원했다. 내가 아름다움을 마음 안에 가지고 그 아름다움을 키우려고 노력하기만 하면 나 하나의 아름다움 때문에 아름답지 않았던 주변까지 기적적으로 차츰 아름답게 될 것을 감히 기대하며…
그러나 그 과정에서 고통도 따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아름다운 어떤 결실을 갖기 위해선 그런 고통쯤은 각오를 해야 되고 또 성서에도 “우리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기뻐합니다. 고통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시련을 이겨내는 강한 끈기를 낳고, 그와 같은 끈기에서 희망이 솟아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로마 5, 3-4)라고 말씀하신다.
스카이 파일럿이란 꽃도 겨울 내내 고통과 시련, 그리고 끈기로 참고 견뎌 결국 아름다운 꽃과 좋은 향기를 내뿜는 것이다.
한편 그런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신선한 마음과 진실, 사랑, 그리고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아름답게 보는 따뜻한 시선과 위대한 시력을 갖은 눈. 그래야 겉모양뿐만 아니라 생명의 빛인 내적인 아름다움을 본다.
물론 우리 주변에는 눈에 띄지 않게 숨어서 우리 모두를 아름답게 만드는 분들이 수 없이 많이 있다. 우리들이 다 같이 한 마음으로 동참하여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면 스카이 파일럿보다 더 아름다운 이웃과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임 무 성
(성아그네스성당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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