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새로 시작하는 인생

2005-07-2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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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초반의 강씨는 십오년을 넘게 한, 밖에서 보기에 완벽하기 이를데 없는 결혼생활을 드디어 접었다. 가슴에 걸리는 아들과 딸을 전 남편에게 남겨두고 한 푼 가진 것 없이 홀로 새 인생을 출발했다.
결혼생활 동안 남편사업의 서류정리를 하며 자녀 양육에 힘썼다. 학군 좋은 동네에 좋은 집도 장만하였다. 건강하게 자라는 두 아이를 기르며 남들이 부러워하는 생활이었다. 시부모의 여유자금으로 남편사업의 종자돈을 삼았다. 물론 매월 원금과 이자를 시부모에게 지불했다. 집을 장만할 때에도 시부모가 집을 구매하고 강씨 부부는 융자금 지불을 시부모에게 해왔다. 시부모가 사업과 주택에 재정적으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서류상의 소유주는 시부모였으며 재정적인 책임은 강씨 부부에게 있었다. 아이들 생일잔치는 물론 명절 때 준비하는 선물들 또한 시부모의 명령과 제안을 따라야만 했다. 가계부 결재를 반드시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남편은 아무런 불만이 없었고 오히려 부모님께 무척 고마워하는 입장이었다. 강씨는 남편과 자주적이고 독립적이며 동등한 결혼생활을 한다기보다 남편과 그의 부모사이에 어설프게 끼어 들어와 사는 발언권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자신의 존재와 의미에 대해서 종종 회의가 왔다. 언제부터인가 사소한 일들로 인해 논쟁이 잦았고 싸움으로 이어질 때도 종종 있었다.
1년여 전 마지막 싸움이 있었다. 자신과 친정을 무시하는 남편의 발언과 밀고 때리는 것에 반대하여 드디어 맞 대항하기에 이르렀다. 아들에게 감히 맞 대항한 며느리에게 노발대발한 시부모는 위자료와 자녀 양육권 없는 이혼을 강요했다. 사업체와 주택이 모두 시부모의 명의로 되어 있었다는 것을 그 때서야 알게 되었다. 맞 대항이나 불평불만 없이 남편과 계속 살면 물질의 혜택을 누리며 생계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형편이었다. 하지만 이혼 시에는 한 푼의 위자료도 없고 경제력이 없는 상황에서 자녀양육권을 갖는 것 또한 무리였다.
법정명령으로 인해 부모교실, 분노 조절반, 개인치료, 부부치료, 가족치료등에 지난 1년여 동안 참여했다. 심한 우울증과 신경성 두통으로 인해 처방약도 복용하고 있다. 각종 상담 치료를 받으면서 강씨는 여태껏 스스로 인생을 살지 않고 타인의 명령과 지시에 따른 꼭두각시 같은 삶을 살아온 자신을 문득 발견했다. 그리하여 재산에 관한 법정투쟁을 그만하기로 결정했다. 과거에 연연해하는 대신에 자신의 현재의 삶을 개척하며 미래를 위해 투자하기로 마음먹었다. 오랜만에 자신이 스스로 자신을 위해서 내린 중요한 결정이었다.
이제부터는 남들 보기에 완벽한 삶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만족과 행복을 깊이 경험하는 삶을 살기로 자신에게 매 번 굳게 다짐하고 약속하고 있다.

이 은 희 <결혼가족상담전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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