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 속의 부처 ‘이판사판 야단법석’

2005-07-2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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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집에서 쫓겨나거나 집이 싫어지면 절로 갔다. 가끔 집도 절도 없는 두메산골에서 헤매기도 했지만.
절에 가면 우선 행자가 되어 궂고 힘든 밑바닥 일부터 도맡았는데 잘 견뎌내면 바랑 하나 메워 한동안 사바세계로 내보내 만행을 시켰다. 이렇게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 자연스런 방식으로 걸러 내어 일단 정식 스님이 되면 수행에 치중하는 이판승이 되든가 행정이나 절 살림살이, 불사 등 치다꺼리 실무에 치중하는 사판승이 되든가, 이것 아니면 저것이었으니 그야말로 이판사판이다.
이판승들이 이렇게 들어앉아 수행만 하다 보니 어느덧 개인불교, 귀족불교로 흘러 종교의 대중성이 옅어지게 되자 스님들이 마을로 내려가 길거리 포교를 시작했는데 신라의 원효 스님이 유명하다.
그러다 때로 들판에서 부흥회를 열기도 했는데 너른 터에 단을 만들고 포장을 쳐서 만든 무대가 야단이며 여기에 마련된 설법 자리가 법석이다. 고상한 교리 얘기만 내리 하면 지루하므로 사이사이 춤이며 노래며 재주넘기며 개그 등 눈요기 귀요기를 베풀어 사람들을 모았고 이윽고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스피커가 없던 시대라 법사님들은 단상에서 사자후를 토하며 법문을 하였다.
때로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게 하기 위하여 갑자기 야단을 꽝 치며 꾸짖거나 법석을 떨어 흔들며 긴장시키거나 웃겼는데 이런 곳엔 으레 장사꾼, 염탐꾼, 방해꾼, 주정뱅이에다 소매치기까지도 꼬이는 법, 울고 웃고 뛰고 절고... 참으로 야단법석이었다.
개중에는 빈둥거리는 백수건달들도 끼어 있었으니, 건달이란 본래 하늘나라에서 음악을 맡아보는 신으로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향만 먹고사는 건달바이다. 사바세계의 건달들은 대개 풍악을 즐길 뿐만 아니라 술과 고기를 남보다 더 탐한다는 점이 다르다.
이렇게 한없이 게으르면서도 욕심, 성냄, 어리석음으로 똘똘 뭉친 친구들이 이승을 하직하는 것은 다시 저승으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각자가 살아있을 때 했던 짓거리에 따라 배당지역이 다르다. 제일 험악한 곳이 지옥이고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까지 여섯 군데인데 지옥은 아주 전문화되어 있어 죄를 벌로 갚아 주는 서비스 정신이 철두철미하다.
아귀는 아귀아귀 먹어도 늘 배고파 못 사는 곳이고 축생은 짐승세계다. 수라는 싸움 좋아하는 아수라 신이 맨날 싸움판을 벌이는 곳이니 그야말로 아수라장임에 틀림없다. 인간은 사람 사는 세상인데 고달픈 삶을 되풀이해야 하지만 사는 동안 인간이 돼서 잘 베풀고 수행하여 다음 번에 천상에 태어날 수만 있다면 더 바랄 나위 없겠다. 그러자면 서녘 깨끗한 땅을 다스리는 아미타 부처님께 몸과 마음을 바쳐 귀의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인데, 이 부처님께 귀의하여 그 이름을 늘 외는 염불이 나무아미타불이지만 입으로만 읊조리고 몸은 딴 짓을 하거나 엉뚱한 생각이나 하고 있으면 평생 도로아미타불 되기 십상이다. ‘나무’라는 것은 귀의한다는 말이며 지금도 인도에서는 사람을 보면 당신께 귀의한다며 ‘나마스 떼’ 하고 두 손 모아 인사한다.


이 원 익
(태고사를 돕는 사람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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