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5-07-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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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칠이 멋진 백조가 되다

미국에 와서 2년 가까이 승욱이는 머리가 항상 삐뚤빼뚤이거나 아님 언제나 깎다 만 머리로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미장원 한곳을 소개해 주셨다. 아버지가 다니시는 스포츠센터 가까운 곳의 미장원인데 주인 언니가 굉장히 호탕하고 머리도 잘 깎는데다가 가격도 무지 저렴한 곳을 발견하셨단다.
난 얼마후 답사를 갔다. 나의 머리도 자를 겸해서 주인 언니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머리를 깎는것이 성격만큼이나 시원해 보였다. 다 자른 후에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언니, 할말이 있는데요… 그러니까… 우리애가요, 머리 깎는 것을 너무 싫어하거든요, 그래서 그런데 언니가 좀 깎아주시면 안되요?”
그랬더니 주인언니는 애들 머리 깎는 것이 다 어렵지, 그러면서 걱정 말고 데려오라고 했다. “정말요? 근데 애가요, 좀 난리를 많이 피울텐데… 진짜로…” 그 주에 승욱이를 데리고 미장원에를 갔다. 주인언니는 어서 들어오라며 반갑게 맞는다. 일단 승욱이를 데리고 의자에 앉았다. 땡칠이 머리를 한 승욱이, 특유의 미장원 냄새에 또 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언니는 “애가 졸려서 그런가 보네?” “아니요, 사실은 애가 좀 장애가 있어요, 그래서 머리 깎는거 너무 무서워하거든요” 그랬더니 언니는 되려 미안한 얼굴로 “그랬구나… 가만히 있어봐 그럼 이렇게 하자!” 일단 주인 언니가 승욱이를 안고 자리에 앉고 뒤에서 난 승욱이의 손목을 꽉 잡으면 미장원에서 일하는 다른 언니가 그 사이 승욱이의 머리를 깎는 것으로 작전을 짰다.
각자 자기 위치에서 승욱이를 안고, 잡고, 깎고… 주인언니도 체격이 만만치 않기에 승욱이는 꼼짝도 못하고 안겨 있다. 안겨있으면서 어찌나 용을 썼는지 머리카락이 바닥으로 안 떨어지고 다 몸에 붙는다. 땀과 깎인 머리로 승욱이 얼굴과 몸은 온통 범벅이 되어있다. ‘아, 이렇게 해서라도 머리를 깎여야 하나?’ 그렇게 6개월을 그 미장원에서 다들 땀범벅이가 되도록 승욱이의 머리를 깎였다.
그러던 어느날 미장원엘 갔더니 불과 며칠 사이에 주인이 바뀌었다. 너무 황당해서 전 주인언니는 어디갔냐고 물었더니 가게를 팔고 다른 곳으로 갔다는거다. ‘아, 이걸 어쩌나… 이제 겨우 승욱이 머릴 좀 깎아보나 했더니 이리 당혹스러울 수가…” 내가 계속 궁시렁궁시렁 전 주인을 찾으니 새 주인이 물어본다. 왜 꼭 전에 있던 분에게 깎아야되는 이유가 있냐고. 난 승욱이 이야기를 했고, 새 주인언니는 한번 데리고 오라고 했다.
승욱이 녀석 밥만 먹으면 그 영양이 다 머리카락으로 가는지 머리카락이 너무 잘도 자란다. 머리 깎을 때가 되어서 미장원으로 승욱이를 데리고 갔다. 새 주인언니에게 지난번에는 이렇게 저렇게 해서 깎았노라 설명했더니 일단 보자기를 씌우고 자리에 앉혔다. 그러더니 그 언니는 승욱이 머리를 예쁘게 쓰다듬으며 “착하다, 오늘 예쁘게 머리 깎자” 그러더니 가위로 싹뚝싹뚝 머리를 자르기 시작한다.
‘헉? 찍소리도 안 내고 쟤가 웬일이지? 승욱이 맞아?’ 새 주인 언니는 머리를 깎으면서 도대체 애가 뭐가 난리를 피운다는 거냐고 나에게 계속 묻는다. 허 참 나 진짜 이상한 사람 됐네… .승욱아! 너 왜 그래? 여태껏 난리를 피우다가 오늘은 도대체 무슨 일인거야, 응?
머리를 다 깎았다. 오늘이 승욱이가 태어나서 제일로 반듯하게 머리를 깎은 것 같다. 그동안 웃기는 미운오리 더벅이 땡칠이 땜빵 머리만 보다가 저리 단정히 깎인 머리를 보니 숨겨있었던 귀공자 백조왕자 얼굴이 선명하게 살아난다. ‘아, 우리 아들이 원래 저 얼굴이었구나…’ 나조차도 생소한 승욱이의 반듯한 모습에 의아해하고 있다.
그후로 1년 반 넘게 그 미장원의 ‘애나’ 언니에게 승욱이의 머리를 깎이고 있다. 도대체 승욱이가 그 언니에게 어떤 것을 느꼈기에 그리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서 머리를 깎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그래도 내가 확신하는 것은 승욱이가 왠지 뭔가를 느끼는 것 같다. ‘애나’ 언니가 자신을 사랑하고 예뻐하고 안전하게 머리를 깎아주는 것을…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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