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5-07-09 (토)
크게 작게
차인홍 교수님을 만난 날

한달전 승욱이 학교에 갔다가 학교 디렉터로부터 이번 해 펀드레이저 브로셔의 표지에 승욱이 사진이 올라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나보고 브로셔 안에 글을 몇줄 써달라 하기에 몇줄을 적어 보냈더니 그 브로셔가 어제 나의 손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가방에 그것을 넣고 오늘 차인홍 교수의 간증집회를 가게된 것이다.
사실 차교수님의 연주는 이번이 세번째이다. 두번 다 LA의 큰 행사에서 보았었다. 첫번째 연주 때는 “어! 저 사람 바이올린 참 잘 켠다!”였고 두번째 연주 때는 “장애인인데 하나도 장애인 같아 보이지 않네”였다. 오늘 만났을 땐 “역시 하나님의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첫번째와 두번째 연주에는 그분의 자서전을 읽기 전이었고 오늘은 그분의 자서전을 읽고난 후여서 그런지 그분의 연주하는 곡 하나 하나가 나에겐 굉장히 진지한 의미로 다가왔다. 연주를 들으면서 그분의 지나온 세월을 마치 영화를 한편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
모든 순서가 끝이 나고 나왔는데, 아뿔싸 그분의 책을 가져왔음 사인이라두 받아갈 터인데… 에구 그래두 조금 있다 인사나 하구 가야겠다 싶어 밖에서 기다리다 교수님 주변에 사람이 없을 때 얼른 가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인사하려고 왔어요” 그분이 힘겹게 나를 올려 보기에 키를 맞추다보니 나도 모르게 그분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다. “저…이 교회 다니는데 저의 아이가 장애가 있어요…”
그분은 내가 인사할 때부터 승욱이를 보았는지 아님 덩치 커다란 여자가 자기 앞에 무릎을 꿇어서 그런지 눈에 눈물이 고여있었다. 나도 순간 눈에 눈물이 고여 말을 못하고 있는데, 그분이 승욱이 등을 쓰다듬으며 애가 몇 살이냐고 목이 메이시는지 말씀을 못하시며 나도 덩달아 목이 메어 겨우 다섯 살이예요 라고 말하고 우리는 말없이 쳐다보면서 몇초가 지났다.
순간 우린 서로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주 짧은 순간에 말이다. 뭔가 그분께 말을 못하고 서 있는데 다른 분이 다가와 말씀을 하시기에 나는 뒤로 물러서게 되었다.
근데 갑자기 그때 가방 안에 어제 학교에서 받아온 승욱이 브로셔가 생각나서 얼른 그것을 드렸다. 그분이 얼마나 감격을 하시던지… “드릴게 없네요. 이 브로셔에 나온 아이가 저의 아이예요. 이거 드리고 싶어요.” 그랬더니 그분이 흔쾌히 고맙다고 가지고 가셨다.
승욱이가 우리 집에 오기 전 난 세상적으로 참 출세를 했다. 성공했다는 사람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그리고 그것을 나의 영광이라고도 생각했었다. 승욱이가 우리 집에 온 후 난 장애와 관련된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되었다. 여러 모임에서 행사에서 그리고 승욱이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까지...
그 사람들을 만날수록 말로 할 수 없는 기쁨, 감격, 그리고 감사를 하게 되었다. 세상에 그 어떤 잘난 사람보담두 조금은 불편하고, 약한 그런 사람들과의 만남이 더 소중하고 귀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오늘 차인홍 교수님의 눈에 가득 고인 눈물을 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나 또한 역시 그분과 같은 생각의 눈물이었으므로…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