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주한인 발명가협 이윤호 고문

2005-07-0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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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아이디어 발전시킨 참신한 발명품

“생활불편 없애 주죠”

발명 아이디어 나오면 먼저 특허청 목록 조회부터


올 상반기 한인들의 자긍심을 높인 사람이 있다. 바로 세상을 바꾸는 과학자 황우석 교수다. 그의 배아줄기세포 연구결과는 난치병 환자들에게 새 희망을 심어줬고, 윤리논쟁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으로 생명공학 연구에 박차를 가하게 했다. 무엇보다도 황 교수는 21세기 바이오혁명을 여는 기술의 중심이 한국임을 각인시켰다. 한인이 과학이 바꾸는 세상의 주체로 부각한 것이다. 자연세계에서 보편적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하는 과학은 실생활과 다소 멀게 느껴지지만, 과학적 창의에 기술적 아이디어를 더한 ‘발명’은 우리 주위에 존재한다. 발명이라면 누구나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생활 속 작은 불편을 해소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아이디어를 찾아 세상을 바꾸는 발명이 탄생하기도 한다. 발명이 취미이자 삶의 원동력인 사람들의 모임, 미주한인발명가협회 원로회원들과 함께 나도 발명가가 되어 과학이 바꾸는 세상의 중심에 서보자.


“보기엔 그냥 플래스틱 클리넥스 상자지만, 이래봐도 지금 가정에서 사용하는 클리넥스 종이상자와 플래스틱 커버를 하나로 만든 발명품입니다.
처음에 이 클리넥스를 장만하면 계속해서 리필(Refill)만 플래스틱 상자에 채워 쓰면 되는 거죠. 중요한 건 한 장씩 뽑아 쓰다가 마지막 1∼2장이 남았을 때 종이상자에 들어있는 클리넥스는 잘 뽑아지지 않지만 이 제품은 그런 단점을 보완한 아이디어 상품이죠”
미주한인발명가협회 이윤호 고문(에버그린 엔터프라이즈 대표)의 집 차고는 발명 연구실이다. 물때방지 칫솔·치약 보관통과 비누통, 샌드페이퍼가 달린 스폰지, 페인트용 비닐커버, 야광 금박 골프공 등 이씨의 발명품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플래스틱 클리넥스 상자를 비롯해 기업체로부터 상품화 제의가 들어온 몇몇 발명품들은 사무실의 깊숙한 장소에 보관하고 있지만, 다른 발명품들은 차고 한구석에서 세상 속으로 나갈 시기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백발의 노신사라도 발명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모르는 이씨가 35년 전 동양물산 지점장으로 도미한 이유도 ‘발명’ 때문. 60년대 후반 한국에서 자신의 발명을 빼앗겼다는 이씨는 “발명가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발상의 전환이 세상을 바꾼 위대한 발명을 가능케 한다”며 “발명은 한번 시작하면 끊임없이 도전하게 된다”고 말한다.
집안 일일랑 몽땅 아내에게 맡기고 늘 차고에 틀어박혀 발명에 몰두하는 이씨의 엉뚱한 구석이 창조적 작업으로 이어지는 건 뭐니뭐니해도 아내 이계순씨 덕분. 패션디자이너 출신인 이계순씨는 자나깨나 발명밖에 모르는 남편의 든든한 후원자다. 아내의 내조 덕분에 미국에 와서 이씨가 발명해낸 건 아무리 해도 쏟아지지 않는 참기름 병뚜껑, 또 지금 블랙 앤 덱커(Black & Decker)에서 출시한 90。방향으로 움직이는 드릴과 유사한 발명품 등이다.
대부분 생활의 지혜를 발전시킨 발명품이어서 이씨의 설명을 듣다보면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것 모두가 발명의 산물임을 실감하게 된다. 발명이라는 게 원래 더하고 빼고 발상을 뒤엎어보고 또 좋은 아이디어를 빌려오거나 반대로 생각하는 작업이기에 세상을 너무 앞서가도 안되고 비슷한 아이디어가 너무 많아도 안 되는 법. 이씨 자신도 오래 전 세탁소용 정장재킷 옷걸이를 고안해 내고는 특허를 출원해볼 생각에 특허청 목록을 뒤졌더니, 양복걸이 특허만 500개 가량 나와 혀를 내두른 적이 있었다. 이후 이씨는 항상 협회 회원들이 발명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먼저 특허청의 목록 조회부터 확인해보고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라고 조언한다.
“발명은 항상 꿈과 현실 사이를 왕래하는 작업입니다.
단순히 아이디어 왕국에 그치지 않고 발명가가 되기까지는 발명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필요하죠. 개발하기까지 상당한 고통이 뒤따르고, 특허 출원을 해놓지 않으면 도중에 다른 사람이 먼저 제품으로 개발해낼 수도 있거든요”

주한인발명가협회(KAIA·회장 이의덕)는 발명의 욕구를 북돋아주고, 발명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단체다.
격월로 첫째 주 토요일 저녁 정기모임을 열어 회원들끼리 발명품 설명회를 갖고 상품 개발 가능성을 토의하고 특허권 출원 절차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
현재 미 전역에 흩어져 있는 회원이 100여명으로, 특허 전문 변호사들이 자문역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발명품이 이미 상품으로 출시된 경우도 있지만, 발명특허를 출원한 후 투자가를 기다리는 회원들도 있고, 기업체로부터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회원들도 있다.
백보한의원 백형권씨의 치약 ‘허벌 브라이트’나 케빈 김 박사의 노화현상 치료 성장 호르몬 RA-H 스프레이 등은 이미 상품화되어 판매가 한창인 경우이고, 임효준 박사의 ‘디젤차 매연제거기’는 서울시장의 요청으로 서울시내에서 디젤차에 장착, 운행해 좋은 평판을 받은 이후 일본과 미국의 기업체들이 상품화를 고려하고 있는 발명품이다.
반면에 한의사 이윤근씨의 아토피 피부병 치료제 ‘혈청’(Bio-Clear Blood Formula)과 유성렬씨의 운동효과가 배가되는 ‘파도타기형 자전거’, 뉴욕거주 김복만씨의 고전류를 이용한 ‘자동 쥐잡기’ 등은 투자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자신이 직접 혈청을 시판중인 이윤근씨는 “현대의학이 고치지 못하는 아토피 피부병을 순수천연성분으로 피를 맑게 함으로써 낳게 하는 치료제”라며 “98년부터 판매에 들어갔지만 20여 년간의 연구와 열정이 만들어낸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발명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천문학적인 액수를 벌어들이는 발명도 있지만, 상품화가 되기도 전에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거나 그냥 사장돼버리는 경우도 발명이 지닌 또 다른 특성이다. 하나의 발명이 상품이 되기까지는 엄청난 노력과 인고의 세월이 필요하므로 특허권 출원은 필수. 그런 점에서 발명가 협회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2002년 서울국제발명전시회(SIIF)에서 동상을 받은 김덕길씨의 ‘미국식 영어발음 올바른 한글표기법’은 당시 도서출판 광야가 내용을 책으로 펴내면서도 ‘영어의 한글표기와 발음법은 미국과 한국 특허국에 특허 출원’된 지적재산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미국 특허 5개를 보유하고 있는 김씨는 알린 앤 어소시에이츠에서 미국과 한국 특허 관련 신상품 개발 및 세일즈 앤 마케팅 특허 평가기술 양도, 자본가와의 연결 업무를 담당했던 특허 관련 전문가.
김씨는 “아무리 특허를 받은 발명품이라도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상품으로 출시돼 세상에 그 빛을 발할 수 있고, 정식 특허를 받기 전이라도 발명의 상업적 잠재성을 고려해 특허청에 임시특허권 출원을 해둘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발명 아이디어만이라도 확보해두는 임시특허권은 간단하고 저렴한 비용으로 출원할 수 있어 ‘어, 저거 옛날에 내가 고안해낸 발명품인데’라는 때늦은 후회가 없다는 것.
이처럼 발명이 ‘취미’이고 또 삶을 지탱하는 원천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모임인 미주한인발명가협회는 오랜 숙원사업이 하나 있다. 한인타운에 어린이발명학교를 설립하고 싶어하는 이상록 고문의 비전을 현실화시키는 것이다.
“평생을 발명의 즐거움으로 살아왔다”는 이씨의 서류가방에는 ‘과학’과 ‘발명품’에 관한 최신자료 스크랩과 나의 발명품노트가 들어있다. 이씨의 노트를 들척여보면, ‘수직비행선’ 같은 거창한 우주선부터 체중을 실어 바퀴를 돌리는 ‘롤러스케이팅 스쿠터’, 그리고 손바닥만한 비닐주머니가 공기를 불어넣으면 우산이 되는 ‘구명우산’ 등 수시로 떠오르는 발명품을 설계한 그림이 수십 장에 달한다.
“한국인의 두뇌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데 아직까지 HP 꿈나무발명가상(Young Inventors Award), 인텔 청소년과학경진대회(ISEF) 등에 미주한인 수상자가 드문 건 안타까운 일”이라는 이씨는 “우리 모두가 뜻을 모아 ‘어린이발명학교’라는 공간을 마련하고, 어린이들의 창조성을 키우고 발명에 대한 흥미를 높이는 발명 강연회를 실시했으면 좋겠다”고 밝힌다.
문의 (213)365-1505

<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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