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립선언서의 두얼굴

2005-07-0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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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죽거든 묘비에 대통령이라 말고
독립선언서 초안자라고 새겨다오”

7월4일 미합중국 탄생 시키고 50년후 7월4일에 숨진 토마스 제퍼슨

버지니아 주의원, 버지니아 주지사, 대륙회의 주대표, 주프랑스 미국대사, 국무장관, 부통령, 제3대 미국 대통령 - 이상은 토마스 제퍼슨의 화려한 인생 경력이다. 그가 죽는다면 묘비에는 “미합중국 제3대 대통령, 여기 잠들다”라고 새겨지는 것이 당연하다. 대통령을 지냈다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마스 제퍼슨은 달랐다. 그는 대통령을 지낸 것보다 자신이 미국 독립선언서를 기안한 사람이라는 것과 버지니아 대학 창립자라는 것을 더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는 살아 생전 자신이 죽은 후 묘비에 새겨질 문구에 대해 굉장히 신경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 제퍼슨은 직접 묘비 문구를 작성해 유언으로 남겨 놓았다. 몬티첼리에 있는 그의 묘비(사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미합중국의 독립선언서를 초안했고,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 버지니아주 헌법을 기안했으며, 버지니아 대학을 세운 토마스 제퍼슨, 여기에 잠들다”
미국의 건국 이념이 무엇이냐 하는 것은 독립선언서 두 번째 구절에 잘 나타나 있다.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조물주에 의해 권리를 부여받았으며 여기에는 생명, 자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포함된다. 이를 위해 정부가 조직되는 것이며 모든 정당한 권력은 피치자의 동의에 따른 것이라야 한다. 이를 파괴하는 정부는 인민이 폐쇄시키거나 새로운 정부를 세울 권리를 가진다”라는 내용이다. 즉 국민이 정부를 타도할 권리를 가진다는 이야기다.
지금 읽어보면 아무 것도 아닌 내용 같지만 유럽의 모든 나라들이 군주의 통치하에 있던 당시로는 폭탄선언에 가까운 혁명적인 주장이었다.
그러나 독립선언서도 스스로 지닌 모순을 수술하는 데는 실패했다. 흑인 노예의 권리를 언급하지 않아 ‘백인만의 인간 평등’을 주장한 셈이 되어버렸으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백인에게만 있는 것이 되어버렸다. 무엇보다 제퍼슨 자신이 몬티첼리 농장에 120명이나 되는 흑인 노예를 거느리고 있었다. 애당초 그는 이같은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독립선언서에 노예제도를 반대하는 문구를 삽입했으나 대농장주가 많은 조지아주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대표들의 완강한 반대로 이 내용이 삭제되었다. 이는 독립선언서의 ‘옥의 티’다
워싱턴 DC에서 남쪽으로 3시간 거리에 있는 제퍼슨의 몬티첼리 농장에 가보면 이상하게도 흑인 관광객이 거의 안 보인다. 링컨 기념관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이는 제퍼슨이 흑인 노예를 많이 거느렸던 사실과 흑인 하녀 샐리 헤밍스를 건드려 아들이 생겼다는 소문이 떠돌았을 때 그가 보인 냉담한 자세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제퍼슨은 6남매를 낳았으나 4남매는 어릴 때 죽어 딸만 둘이 살아 남았다. 결혼 10년만에 부인을 사별했으며 백악관 시절에는 큰딸 마사가 퍼스트 레이디 역을 대신 했다. 흑인 하녀 샐리 헤밍스의 아들인 매디슨 헤밍스는 후일 자신의 아버지가 제퍼슨이라고 밝혔으나 증명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매디슨 헤밍스의 후손들이 최근에 또 주장하자 1998년 이 소문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 DNA 테스트한 결과 헤밍스의 후손들이 제퍼슨의 유전자를 지닌 것이 밝혀져 지금은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제퍼슨의 죽음은 드러매틱하다. 그는 바로 미독립선언 50주년인 1826년 7월4일 몬티첼로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그는 “7월4일이 며칠 남았는가”를 죽기 며칠 전부터 계속 물었다고 한다. 그의 정적이며 독립선언서 서명자인 존 아담스 대통령도 같은 날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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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제퍼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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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역할을 한 맏딸 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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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 많기로 유명한 제퍼슨의 서재. 대부분 의회에 기증 되었다. 제퍼슨은 후일 버지니아대학 도서관도 자신이 직접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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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주에 있는 몬티첼로 농장의 제퍼슨대통령 생가. 워싱턴대통령 생가는 영국식으로 지어진데 비해 제퍼슨 생가는 내부가 완전히 프랑스식으로 꾸며진 것이 특징이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이 농장은 5000에이커나 되지만 제퍼슨이 빚을 많이져 후손들이 판 것을 ‘리바이’라는 유대인이 다시 사들여 정부에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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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기념관에는 흑인 관광객이 몰리지만 제퍼슨 생가에는 백인 일색인 것이 매우 대조적이다. 제퍼슨과 흑인노예에 얽힌 스캔들 때문인 것 같다. 그는 120명의 흑인노예를 두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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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매디슨(4대 대통령)은 제퍼슨 집에 자주 묶어 ‘매디슨 룸’이라는 방을 따로 두었을 정도였다.

이 철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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