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꼬챙이서 빼 먹는 맛 ‘따봉’ 아르메니안식 바비큐

2005-06-2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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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챙이서 빼 먹는 맛 ‘따봉’  아르메니안식  바비큐

스티브 박씨(오른쪽)와 그의 친구들이 공원에서 바비큐를 굽고 있다.

전문마켓서 양념된 고기 사다 굽고
각종 야채 곁들이면 야외파티로 최고

파크 라브레아 마라톤 동호회를 이끄는 스티브 박씨는 좀 특이한 구석이 있다.
불현듯 친하게 지내는 몇 집을 불러모아 바비큐 파티를 열곤 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서로 돌아가며 열자고들 하여도 매번 혼자 파티를 독점하는 것도 그렇고, 다들 굽는 갈비나 아사도 대신 아르메니안 식 돼지갈비와 닭가슴살 굽기를 고집하는 것도 그렇다.
이번에도 그는 지난 일요일 오후 공원으로 다섯집을 불러모았는데, 자신의 생일과 아버지날이 겹쳤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아버지날이자 자기 생일날, 땡볕에 뜨거운 불 앞에서 각종 고기를 구워 친구들과 그 식솔 20여명을 배불리 먹였으니, 좋은 아버지로 치자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아버지가 그일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박씨가 그렇게 쉽고 자신만만하게 사람을 불러모으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아르메니안 마켓에서 파는 돼지갈비와 닭고기는 양념된 것이라 그냥 쇠꼬챙이에 꽂아 굽기만 하면 되고, 나머지는 아내가 다 알아서 준비하기 때문에 그 자신은 도무지 힘들 일이 없는 것이다.
오히려 사람들 앞에서 그럴 듯한 장갑을 낀 채 불을 피워 올리고, 숙련된 조교의 솜씨로 쇠꼬챙이에 고기 덩어리를 차곡차곡 꽂은 다음, 그릴에서 꼬챙이를 돌려가며 통째로 구워내면, 마치 바비큐식당 셰프가 출장이라도 나온 듯 매우 전문가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옆에서 바비큐 파티를 벌이는 다른 일행들마저 주눅 들게 만드는 특별한 재주가 있는 것이다.
이때마다 죽어나는 것은 아내 앤젤라씨인데 돼지고기, 닭고기를 안 먹는 사람들을 위해 쇠고기 꽃등심을 사다가 얇게 썰어 양념한 다음 수십개의 등심꼬치구이를 만드는 일은 언제나 보게되는 풍경이고, 흰밥·잡곡밥 전기밥솥 두통에 샐러드, 김치, 무생채, 마늘장아찌, 오이와 고추, 쌈장, 각종 음료수까지 고루 준비하여 실어 나르는 일을 한마디 불평도 없이 해내곤 한다.
게다가 이번에는 다섯가지 야채를 꼬치에 끼워 구워낸 그릴드 베지터블의 별미를 선보였으며 파장 무렵엔 차콜 속에서 구워둔 옥수수와 감자를 꺼내놓아 인기몰이를 하기도 하였다.
그 뿐인가, 생일 케익까지 잘라 서브한 후에는 집에서부터 차게 준비해온 수박 두통을 쩍쩍 썰어내 입가심을 시켜준 것도 모두 앤젤라씨의 일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모이라는 대로 모인 어른 아이 20여명은 그야말로 ‘입’만 갖고 와서는 거의 다섯시간 동안 이 고기 먹고, 저 고기 먹고, 놀다 먹고, 쉬다 먹고, 끝으로 생일축하 노래 한번 부르는 것으로 그 모든 것을 때웠던, 참으로 다시 한번 똑같은 스케줄로 모이고 싶은 하루를 보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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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식 돼지고기와 닭고기 바비큐. 특별 양념으로 고기 냄새가 전혀 나지 않으면서 고소하고 쫄깃쫄깃하다.



자신있게 손님 초청 요리 솜씨 자랑을

★ 야채 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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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마늘, 토마토, 가지, 버섯을 꼬치에 끼워 구운 야채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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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날, 아버지들이 구운 고기를 어머니들이 서서 맛있게 먹고 있다. 왼쪽부터 은수, 다이앤, 줄리, 앤젤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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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젤라 박씨가 공수해 온 사이드 디시들. 샐러드(왼쪽)는 로메인 상추, 붉은 양파, 브라컬리, 토마토, 버섯을 썰어 넣고 올리브 오일에 식초, 간장, 설탕, 소금, 고춧가루, 다진 마늘 섞은 드레싱으로 무쳤다.


요즘 미국인들은 바비큐 할 때 야채를 함께 구워먹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야외 바비큐 파티에 언제나 등장하는 생야채 샐러드 대신 불에 직접 구운 그릴드 베지터블(grilled vegetables)이 더 맛있는 건강식 사이드 디시로 환영받는 추세다.
야채는 구우면 부드럽고 달짝지근해지면서 먹기가 한결 수월해지는데다 식어도 맛있고, 남으면 빵 속에 넣어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기도 좋기 때문에 식탁에서 점점 활용도가 많아지고 있다. 야채는 거의 모든 종류를 구울 수 있으며 방법 또한 너무나 쉬워서 금방 시도할 수 있다.
바비큐에 함께 굽는 야채들은 호박, 감자, 아스파라거스, 양파, 가지, 토마토, 고추, 피망, 당근, 옥수수, 버섯 등으로 이중 딱딱한 것은 토막을 작게 내거나 살짝 익힌 다음 굽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속은 익지 않고 겉만 타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굽는 방법은 야채를 손질해 씻은 다음 적당한 크기로 자른 다음 그릴에 얹는다.
적당한 크기란 토마토는 반으로 자르고, 양파는 1cm 두께로 동글납작하게, 가지는 꼭지를 떼고 길이로 반 가르고, 고추나 피망도 반 가른 다음 씨를 빼고 길이로 자르는 방식이다. 보통 단단한 야채의 경우 1/2인치 정도의 두께가 좋다.
이 야채들에 올리브 오일이나 버터를 살짝 발라 중불에 올려 가끔 뒤집어주면서 타지 않게 구우면 된다. 오일이나 버터를 바르는 이유는 야채가 말라 석쇠에 들러붙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야채는 아무 양념없이 구워도 맛있다.
더 부드럽고 습기가 많게 구우려면 야채를 미리 30분 정도 찬물에 담가 물기를 충분히 흡수하게 한 다음 굽는다. 미국인들은 레몬이나 라임 즙을 뿌려 굽기도 한다.
주의할 것은 바비큐 구이판의 걸치는 격자그물 간격이 너무 클 경우 야채가 아래로 빠질 수 있는 것인데, 이럴 때는 야채구이용 랙(rack)을 따로 사거나 혹은 알루미늄 포일을 두어겹 깔고 그 위에서 구워도 좋다. 여러가지 야채들을 일정한 크기로 잘라 꼬치에 끼워서 구워도 좋다.
야채에 따라 중불에 올려 5~20분 정도면 알맞게 익는다. 감자와 옥수수는 반으로 자르거나 통째로 포일에 두겹으로 싸서 차콜 옆에 묻어두면 옥수수는 25분, 감자는 1시간후 익는다.


★ 아르메니안 미트 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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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타모니카와 세라노의 ‘카라바흐’ 식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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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식으로 양념해 파는 고기들.

샌타모니카와 세라노 위치
고기, 소시지, 햄, 빵등 구비
철갑상어, 쇠꼬리등도
가격도 비교적 저렴한 편

스티브 박씨가 BBQ 파티 때마다 들르는 고기상점은 샌타모니카와 세라노에 위치한 ‘카라바흐 미트 마켓 & 베이커리’(Karabagh Meat Market & Bakery)로 아르메니안 식품점이다.
겉보기엔 허름하지만 바쁠 땐 러시안을 비롯한 동구계 손님들이 바글바글 들끓는 고기와 빵 전문점으로 수십종류의 고기와 소시지, 살라미, 햄, 베이컨을 갖추고 있다.
특히 고기는 질좋은 쇠고기로부터 한번도 얼리지 않은 오개닉 돼지고기, 양고기, 닭고기들을 부위 별로 신선하게 갖추고 있으며 소간과 한국식 꼬리곰탕도 있고 기름 한점 없이 빨간 육회용 쇠고기(beef chikofta)도 있다. 메추라기 고기와 철갑상어(sturgeon) 고기도 양념해 팔기 때문에 사다가 굽기만 하면 특별식을 맛볼 수 있다. 가격도 상당히 저렴한 편.
15년 전 이 마켓을 오픈했다는 주인 헬레나씨는 “아르메니안 식품점이 드물기 때문에 광고 한번 한 적 없어도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말하고 “특히 바비큐 시즌이 되면 고기를 사려는 미국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며 러시아 출신 고려인 고객도 상당히 많이 찾는다고 전했다.
스티브 박씨가 샀던 고기는 양념 돼지고기(Pork Loin 파운드 당 3.69달러)와 양념 닭가슴살(Chicken Breast 파운드 당 3.29달러)로 어떻게 양념했는지 묻자 헬레나씨는 “200년 전통의 아르메니안 고유의 양념이라 절대로 말해줄 수 없다”며 “왕족들이 먹던 고기양념”이라고 덧붙였다. 일주일에 팔리는 고기 양이 무려 2톤, 가장 많이 팔리는 고기는 돼지고기라고 한다.
‘카라바흐 마켓 겸 베이커리’는 아르메니안들의 주식인 ‘쇼티 브레드’ 전문점이기도 한데 특별 오븐에서 구워내는 이 쇼티 빵을 사기 위해 주말이면 손님들간에 싸움이 나는 경우가 하도 많아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1인당 2개로 제한해 팔고 있단다. 한 점 뜯어서 맛을 보니 특별한 맛이 느껴지지 않는 밀가루 빵. 무미하기 때문에 우리의 밥처럼 늘 먹는 빵인가 보다.
‘카라바흐’는 차콜과 쇠꼬챙이(Skewer) 등 바비큐에 필요한 모든 재료들도 갖추고 있으며 전체의 70% 이상이 러시안 상품들이다.
주소와 전화번호는 할리웃 점 5363 Santa Monica Blvd. LA 90029 (323)469-5787, 밴나이스 점 13747 Victory Blvd. Van Nuys, CA 91401 (818)781-4411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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