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보, 춤 한번 추실까요?

2005-06-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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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룸댄스 추는 중년부부들
진정한 매력은 ‘서로의 교감’

얻는 사랑은 ‘덤’
운동 효과는 ‘짱’

2000년에 개봉됐던 일본 영화 ‘쉘 위 댄스’와 이의 리메이크 판인 리처드 기어 주연의 ‘쉘 위 댄스’는 춤바람 난 중년 아저씨들의 이야기다.
어느 한 구석 부족한 게 없지만 왠지 모를 공허함을 안고 살던 중년의 스기야마와 존은 어느 날 춤을 발견하고 이로 인해 새로운 활력을 찾아간다. ‘한번이라도 좋으니, 저 여인과 춤을 추고 싶다’는 대상을 향한 바람은 춤에의 순수 열정으로 변화된다.
지난 4월말 극장가에 돌풍을 일으켰던 영화 ‘댄서의 순정’. 조선족 최고의 무용수인 언니를 대신해 서울에 온 연변소녀 장채린(문근영)은 영새에게 댄스스포츠를 배운다. “사랑하지 않으면 몸을 완전히 맡길 수 없어. 춤을 출 때만은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해!” 두 사람 사이에 신뢰 이상의 감정이 커가면서 그들의 춤은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춤 영화의 성공과 함께 미국과 한국 양쪽에선 볼룸댄스 열풍이 일고 있다.
이민 초기, 허리 졸라매고 살 때야 먹고 사느라 바빠 그럴 기회가 없었지만 요즘 한인 사회의 크고 작은 모임, 연회(Banquet)에서는 심심찮게 행사의 하이라이트로 댄스 순서가 마련된다. 그럴 때 보면 예전과 달리 일취월장한 춤 실력을 뽐내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보니 달라진 건 춤 솜씨뿐이 아니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가슴을 쫙 편 자세에서는 자신감과 함께 삶에 대한 긍정적인 에너지까지 읽혀진다. 행복감에 가득 차 있는 그들의 표정,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들의 변화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원인은 춤바람. ‘춤‘ 하면 으레 시장바구니 든 중년 여인들이 카바레에서 불륜의 현장을 들킨 모습을 연상하는 우리들에게 춤바람이라는 표현이 조금 점잖지 않게 생각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들의 삶이 갑작스럽게 활기를 띠게 된 것을 보면 춤이 가져다 준 변화는 바람이라도 보통 휘몰아치는 마파람이 아닌 것 같다.
7년 전만 해도 어떤 연회에서건 엉덩이 무겁게 자리를 지키고 있던 권기상씨(57·자영업)는 동문회의 기금 모금 파티를 손꼽아 기다렸다. 꼭 실력 발휘가 목적은 아니었지만 아내와 함께 사교춤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갈고 닦은 춤 솜씨를 뽐낼 기회를 굳이 피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웬 갑작스런 춤바람? 중년의 한인들이 볼룸댄스를 시작한 이유는 영화의 주인공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자녀들 다 키워 놓고 난 후 다가온 중년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선택한 것이 볼룸댄스였던 것.
영화에서는 그렇게 멋있어 보이지만 처음 시작할 때는 발도 엄청 밟았고 머뭇머뭇 어정쩡한 스스로의 모습에 그만두고 싶었던 때도 많았다고 한다. 일주일에 한두 번 받는 레슨만으로 많은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피아노, 골프 등 다른 취미생활과 매한가지.
권씨의 경우 집의 거실 벽을 모두 유리로 바꾸고 일주일에 레슨 외에 적어도 두 시간 정도 꾸준히 연습하며 열정을 쏟은 결과, 6개월 만에 음악에 맞춰 스텝을 밟을 수 있게 됐다고 한다.
7년여 세월을 꾸준히 계속한 결과 이제 그는 물 찬 제비가 다 됐다. 차차차, 왈츠, 삼바, 룸바, 탱고, 자이브 등 다양한 리듬을 타고 나빌레라, 멋진 춤 솜씨를 자랑하는 그는 주말이면 친구 부부와 함께 레슨을 받고 댄스 오픈 파티에 참가해 즐거운 시간을 갖고 있다.
과연 레슨을 받으면 구제하기 힘든 몸치도 춤을 출 수 있게 되는 걸까, 한인 타운 내의 댄스 스튜디오를 찾아봤다. 수지 김씨가 운영하는 댄스 스튜디오에는 현재 약 150명의 수강생들이 댄스를 배우고 있다.
오늘 배우는 춤은 왈츠. 꿍따따 꿍따따 손으로는 삼각형을 그려가며 온 몸으로 느끼는 리듬인데 오른발 왼발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쭉 미끄러지기도 하려니 발만 따라하는 것만도 쉬운 일이 아니다.
파트너 없이 발동작만 한 스텝씩 따라할 때는 어눌하게만 보여 이것도 춤일까 싶었는데 파트너 손을 잡고 음악에 동작들을 맞춰보니 제법 멋진 그림이 펼쳐진다. 발을 배배 꼬고 지진아처럼 잘 따라하지 못하던 학생들도 어느 틈에 음악을 몸으로 느끼며 흥이 난 표정이다.
“시선을 저 멀리 두세요. 허리를 쫙 펴시고요.” 엉거주춤하던 자세는 우아한 자태의 수지 김 선생 잔소리에 따라 아름답고 자신감 넘치게 변화된다.
유난히 좋은 자세로 날렵하게 몸을 움직이는 커플이 눈에 띈다. 이은호(65·자영업)씨와 그레이스 리(63·학교 카운슬러)씨 부부는 중년의 부부가 함께 시작하기에 볼룸 댄스만큼 좋은 취미생활도 없다고 말한다.
특히 왈츠처럼 온 몸을 밀착하고 춤을 추다 보면 잊혀졌던 아내에 대한 애정이 되살아난다고. 파트너와 호흡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자칫 중년 이후 남남처럼 살기 쉬운 부부관계에 탄력을 가져다주는 것은 물론, 운동량이 많아 비만을 해소하기에도 좋고 성인병 예방에도 최고라고 하는데, 이들 부부의 댄스 예찬론이 결코 과장은 아닌 것 같다.
“댄스를 시작하게 되면서 얻게 된 가장 큰 수확은 자신감과 생활의 활력이에요. 사는 게 늘 시큰둥했는데 춤을 추고 난 뒤에는 항상 얼굴에 미소가 떠나질 않네요.” 우아하고 그윽한 댄서의 미소를 지으며 선정자(61·보험업)씨가 말한다.
춤 배워 댄스 경연대회 나갈 것도 아닌데 뭐에 쓰냐는 질문도 있을 수 있겠다. 연회의 하이라이트, 크루즈 여행의 선장 초대 만찬 석상에서 춤을 추지 않으면 머쓱하게 다른 커플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된다. 꼭 드레스 입고 남들 앞에서 추는 게 아니더라도 어차피 건강을 위해 운동 한 가지는 시작하려 했었다면 댄스는 아주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시작하고는 싶은데 파트너가 없어서’라며 망설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댄스 스튜디오에는 똑같은 처지에 있는 학생들이 꼭 있게 마련. 중요한 건 가슴의 열정이다. 삶에 활력을 넣어주는 건강한 춤바람에 한 번 폭 빠져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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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 볼룸댄스 열풍을 일으킨 영화 쉘 위 댄스의 한 장면.


볼룸댄스란

무도회에서 추는 춤으로 댄스스포츠라고도 한다.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도법으로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남녀가 한 쌍을 이루어 리듬에 맞춘 몸의 움직임을 통해 예술의 미적 가치를 창조하는 스포츠다. 오늘날의 댄스스포츠는 사교적 목적보다 생활체육으로서의 의미가 더 커졌다.
교양과목, 문화센터와 사회교육원 등의 강좌로 채택돼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으며 건강관리와 레크리에이션 두 가지 목적에 모두 좋다. 숙달될수록 더 큰 체력과 고도의 기술 그리고 파트너와의 조화를 요한다.


■LA 인근의 볼룸댄스 스튜디오

▲수지 김 댄스 스포츠 스튜디오:3750 W. 6th St. #205, Los Angeles, (213)385-8508
▲장 댄스 스튜디오:1101 S. Vermont Ave. #201, Los Angeles, (213)383-4300
▲Pasadena Ballroom Dance Assn.:South Pasadena, (626)799-5689
▲Ballroom Dance Lessons:P.O. Box 3423, Santa Monica, (310)829-2320
▲Executive Ballroom Dance:264 S. La Cienega Bl. #417, Beverly Hills, (310)854-8884
▲Santa Monica Dance Studio:211 Arizona Ave., Santa Monica, (310)319-5339
▲Arthur Murray Dance Studio:262 N. Beverly Dr., Beverly Hills, (310)274-8867
▲Debbie Reynolds Dance Studio:6514 Lankershim Bl., North Hollywood, (818)985-4176


글·사진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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