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맛있는 드라마’ 안방·부엌 후끈

2005-06-22 (수)
크게 작게
뚱뚱해지면 어때
예쁘고 달콤한 케익
안 먹을 수 없지

요즘 한국에선 맛있는 드라마가 인기다. KBS드라마 ‘러브홀릭’, MBC드라마 ‘사랑찬가’와 ‘내 이름은 김삼순’, SBS드라마 ‘온리유’ 등이 요리를 소재로 혹은 레스토랑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드라마들. 이제 막 타운 비디오가게에 도착한 ‘내 이름은 김삼순’과 ‘온리유’는 각각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유명요리학교 출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본격 요리 드라마다. 모두 요리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드라마이지만 초반부터 시청률에선 봉봉 오 쇼컬라(초컬릿 과자)처럼 달콤한 드라마를 표방하는 ‘내 이름은 김삼순’이 압승을 거두고 있다. ‘유효기간이 지난 호빵’으로 불리는 뚱녀 파티셰(Patissier·패스트리 셰프) 삼순이가 극중인물 설정이나 연기면에서 두루두루 시청자들을 즐겁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종영한 국민드라마 ‘대장금’에 필적할만한 드라마가 될지는 두고봐야 알겠지만, 개인 블로그나 홈피에 예쁜 케익과 과자, 그리고 강추 카페 사진 올리기를 좋아하는 20·30대 여성들로부터 절대적 지지를 얻고있는 삼순이는 그야말로 기세등등이다.


각종 음식 “보는 것도 즐거워”


‘내 이름은 김삼순’‘온리유’등 TV 방송 극마다 요리 주제로 인기

먼저 삼순이를 소개하면, 방앗간 집 셋째 딸로 우연히 헌 책방에 들렀다가 프랑스 요리책에 눈이 머무른 후 악착같이 돈을 모아 프랑스 파리에 있는 ‘르 코르동 블루’(Le Cordon Bleu)로 요리 유학을 떠난다. 110년 전통을 자랑하는 르 코르동 블루는 클래식 명화 ‘사브리나’에서 오드리 헵번이 요리수업을 받은 바로 그 학교. 한국에도 숙명여대가 설립한 르 코르동 블루 숙명아카데미라는 분교가 있을 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한 요리학교다.
삼순이는 파리에서 맛있기로 소문난 베이커리들을 모조리 뒤져 케익과 과자의 맛을 봤을 만큼 열정이 대단한 요리사 지망생으로, 파티셰(Patisserie) 과정을 수료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프렌치 레스토랑 보나뻬띠에 채용되면서 꿈에 그리던 파티셰의 달콤한 인생을 펼친다.
그래서 이 드라마에는 삼순이가 삼식이(원래 드라마 속 이름은 진헌이다)의 얼굴에 던지는 ‘망고무스케익’을 비롯해 손님의 부탁을 받고 다이아몬드 반지를 넣어 만든 아이스크림 ‘마르키즈 글라세’, 헤어진 남자친구의 약혼식 케익용으로 생각해 내는 고춧가루 케익까지 시각과 미각을 동시에 만족시켜 주는 예쁘고 맛있는 케익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코믹한 연기와 보는 재미가 가득한 이 드라마는 삼순이처럼 시럽 듬뿍 넣은 라테만 마실 정도로 단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고문이다. 드라마를 보노라면 한인타운 인근에서 박화정씨가 만드는 ‘라티상 뒤 쇼컬라’(L’Artisan du Chocolat)의 달콤쌉싸름한 초컬릿이 머릿속을 날아다닐 정도. 하지만, TV 화면을 꽉 채우는 삼순이의 포동포동한 볼살을 쳐다보면, 삼순이처럼 매일 밤 훌라후프를 돌려도 살이 빠질 승산이 없을 만큼 망가질 순 없다는 결심과 더불어 밤새도록 참고 견디는 인고의 시간을 맞기 때문이다.
다행히 코미디 드라마와 그다지 코드가 맞지 않는 시청자라면, 초컬릿보다는 고추장 파스타를 내세운 드라마 ‘온리유’쪽으로 기울 수도 있다. 그러나, 온리유에 등장하는 요리도 칼로리가 만만치 않다. 온리유는 드라마 초반 주인공들의 오버 연기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진부한 설정이 드라마적 재미를 반감시키지만, 요리 자체를 또 하나의 주인공으로 설정한 드라마.
대장금이 보여준 화려한 궁중요리처럼 요리하는 장면과 완성된 요리를 클로즈업시켜 시청자의 미각을 자극하는데, 이탈리아의 요리학교 ICIF(Italian Culinary Institute for Foreigners)로 요리 유학을 다녀온 은재와 현성이 소개하는 현대적 감각의 퓨전 요리들이 주로 등장한다.
먼저 주인공인 차은재에게 이탈리아 비첸차로 단기요리연수의 기회를 제공한 요리경연대회 출품작 ‘녹차티백을 이용한 라면’. 극중 지적대로 레서피라고 하기엔 창의성이 결여된 지극히 평범한 요리지만, 모든 참가자들이 치즈와 햄 등을 동원해 느끼한 맛을 낸데 반해 녹차로 우려낸 국물에 시원한 무와 아삭아삭 씹히는 숙주나물, 쫄깃한 면발이 라면 그대로의 맛을 살려 심사위원들을 개운하게 만든 요리다.
다음은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중요한 장치로 사용된 ‘고추장 펜네 파스타’. 엄마 맛과 추억을 상징하는 고추장 파스타는 TV에 비친 완성품으로 봐선 떡볶기의 떡 대신 펜촉 모양의 펜네 파스타를 넣은 것 같다. 상상컨대 올림픽 가의 퓨전 일식 레스토랑 ‘미소’에서 먹는 명란 파스타나 김치 파스타 같은 맛이리라.
고추장 파스타를 만들던 엄마의 대사를 인용하면, 고추장 소스의 농도가 중요한데 물(?)과 고추장의 비율은 8대2 정도로 하고, 올리브 오일을 넣어 이렇게 저렇게 하면 엄마맛 고추장 파스타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머지않아 ‘영계삼계탕 로스트’가 등장한다니 이 드라마도 계속 시청하려면 저녁을 단단히 먹고 TV앞에 앉아야 할 것 같다.
이래저래 올 여름은 요리 드라마들 때문에 눈과 입은 즐거워도 몸은 괴로워질 듯하다.

<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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