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판이 한국전쟁 비극 불렀다

2005-06-2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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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대대의 혈전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 북한 인민군의 총공격이 시작되었을 때 38선 부근에 미군이라고는 1명밖에 없었다. 그는 주한 미군사고문단(KMAG)의 ‘조 대리고’ 대위였다. 당시 미군은 1년 전에 완전히 한반도에서 철수하고 군사고문단 250명만 서울에 남긴 상태였다.
미국은 왜 주한 미군을 철수시켰을까. 2차대전 후 계속된 의회의 군예산 삭감으로 해외주둔 병력을 줄이지 않을 수 없었으며 유럽의 러시아 위협에만 초점을 맞추고 한반도 상황은 별 것 아닌 것으로 오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판은 오판을 낳는 법이다. 미국은 한국에서 전쟁이 나면 3일 안에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 2개 사단을 언제나 투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것 또한 오판이었다. 나중에 판명되었지만 24사단 스미스 대대처럼 ‘준비가 안된’ 미군을 서울 근교 안산전투에 투입해 대부분이 전사하는 비극을 초래했다. 미군이 모습을 보이면 북한이 전쟁 확대를 피하기 위해 물러날 줄 알았고 우수한 화력으로 쉽게 인민군을 제압할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7월 초 일본에서 날아온 미군이 조치원 부근에 모습을 나타냈을 때 시민들은 거리에서 만세를 불러 환영했으며 전쟁이 곧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스미스 대대는 M1 소총과 바주카포밖에 없는 경무장 부대(사진)였고 그나마 장비들이 낡아 발사가 안되고 탄환도 모자라는 믿기 힘든 악조건 속에서 싸웠다.
스미스 대대 장병들의 장렬한 전사는 미군 수뇌부가 한반도 상황을 잘못 판단한 데서 빚어진 ‘상부의 오판에 의한 피해’였다. 코리아가 어떤 나라인지도 잘 몰랐고 인민군의 남침이 얼마나 준비된 것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전장에 투입되었으니 적도 모르고 아군도 모르는 ‘백전백패’의 조건을 미군 자체가 지니고 있었다.
이 와중에서 가장 용감한 행동을 보인 사람은 맥아더 장군이다. 그는 인민군 야크기 100여대가 출몰하는 상황에서 6월29일 경비행기를 타고 도쿄에서 수원으로 날아와 이승만 대통령, 무초 주미대사, 채병덕 육군참모총장과 회의를 가진 다음 한강 부근까지 올라와 시찰하는 엄청난 모험을 감행했다. 당시 도쿄에 있는 극동사령부 참모들도 위험하다고 말렸지만 맥아더는 한국 전선을 자신이 직접 돌아보는 것이 전략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었다. 맥아더가 최전선에 나타나는 것만으로 한국군의 사기가 충천하고 인민군에게 미군이 참전할 것이라는 강한 인상을 심어 남진 속도를 늦추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의 전용기가 수원비행장에 착륙했을 때 한쪽 활주로 끝에서는 인민군 야크기의 폭탄이 떨어지고 있을 정도로 상황이 긴박했었다.
후르시초프의 회고록에 따르면 한국 전쟁은 ‘김일성이 기획하고 스탈린이 승낙한 전쟁’으로 정의되어 있다. 스탈린은 처음에 미군 개입 가능성 때문에 전쟁을 반대했으나 김일성은 속전속결하면 미군이 참전할 시간도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도 오판이었다. 결국 양쪽이 상대방의 의지와 실력을 인정하고 휴전협정을 체결하기까지는 3년이 걸렸다. 이 전쟁에서 미군 3만3,629명이 전사했다.
워싱턴 DC에 있는 한국전 기념공원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다.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나라를 지키라는 부름에 응한 우리의 아들딸들을 미국은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만난적도 없는 사람들, 알지도 못하는 나라”를 위해 싸운 미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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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DC 링컨동상 앞에 있는 한국전쟁 기념공원. 판초 우의를 걸치고 수색하는 장면은 전형적인 6.25 전쟁의 상징이다. 미군이 참전하기 시작한 그해 7월은 유난히 비가 많이 왔으며 겨울에는 살을 에이는 추위가 계속 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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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알지도 못하는 나라를 지키라는 부름에...”라는 글이 새겨진 석판을 읽고 있는 관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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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분수대 벽에는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고 새겨져 있다.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미군은 3만3,629명에 이르며 부상자는 10여만명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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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약 130만명의 관광객이 한국전쟁공원을 방문한다. 왼쪽에 전투현장을 그린 벽화가 있다.

이 철 <이사>
chul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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