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새들도 쉬어가는 사랑심은‘작은 숲’

2005-06-1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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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그로브시 선정

‘올해의 가장 아름다운 집’

잔 오·오미석 부부를 찾아


고목 한그루만있던 뒤뜰이
3년만에 꽃물든 정원으로

HSPACE=5

아침마다 꽃에 물주기로 하루를 시작하는 오미석씨는 날마다 새롭게 피어나는 꽃봉오리를 보는 즐거움이 삶의 활력을 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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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그로브시로부터 올해의 가장 아름다운 집으로 선정된 오씨 부부의 주택 지붕 위에 자리잡고 있는 녹색 새집.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주택으로 옮겨가는 사람들의 공통된 꿈은 예쁜 정원 꾸미기다. 꽃이 만발한 정원, 수목이 아름다운 정원을 꿈꾸며 이사를 했는데, 막상 꽃삽을 들어보면 정원 가꾸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음을 느낀다. 그래도 정원 가꾸기에 심취해보면, 자연은 거짓말을 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주말마다 꽃씨를 사다가 뿌리고, 줄기가 나오면 꺾기를 해주고, 알뿌리식물은 포기나누기를 해주면, 계절의 변화를 담은 화원이 탄생한다. 또 곳곳에 새집을 지어주면 오가는 새들이 날아드는 휴식처가 된다. 정원 가꾸기야말로 성실하게 정성을 다하면 그만큼 행복과 기쁨이 돌아오는 것. 가든 그로브시가 선정한 ‘올해의 가장 아름다운 집’(Home of the Year) 주인 잔 오·오미석(49)씨 부부와 함께 아름다운 정원 꾸미기에 도전해보자.

오씨 부부의 단층주택(9392 Maureen Dr. Garden Grove)은 새들이 찾아드는 정원이 아름다운 집이다.
타운하우스에 살던 이들 부부가 마당이 넓은 지금의 주택으로 이사온 건 3년 전. 그 당시에는 고목 한 그루가 뒤뜰 한구석에 버티고 서있는 지극히 평범한 옛날 집에 불과했다.
“타운하우스에서 생활했을 때 늘 꿈꾸던 게 있어요. 다음에 주택을 장만하면 멋진 정원을 꾸미자는 꿈이었죠. 그래서 이사온 그 날부터 이젠 마당 넓은 집에 살게 됐으니 원 없이 한번 가드닝을 해보자고 둘이서 비장한 각오(?)를 했습니다”
꽃 기르기를 좋아하는 아내 오미석씨는 남가주에 있는 화원이란 화원은 죄다 뒤지다시피 해서 어린 묘목과 꽃씨를 사다 심었고, 잔 오씨는 꽃과 어울리는 장식물을 만들기 위해 구석구석 돌담을 쌓고 작은 개울가를 만들어 정원을 꾸미기 시작했다.
“지난겨울 비가 많이 내리는 바람에 동백꽃도 피어나고, 자이언트 버드 플라워도 꽃을 피웠다”며 마냥 신기해하는 미석씨는 “레이커스의 열렬한 팬이어서 꽃도 보라색(purple)이나 노란색이 좋아한다”고 밝힌다. 시계 문자판과 닮은 꽃받침이 볼수록 신비한 느낌을 주는 보랏빛 시계꽃(Passion Flower)과 나팔 모양의 노란꽃이 무수히 아래로 축축 늘어지는 앤젤 트럼펫(Angel Trumpet)이 싱그러운 나뭇잎 사이로 군데군데 피어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수채화 팔레트처럼 화려한 꽃들이 만발한 오씨 부부의 정원에 들어서면, 여기저기 자리잡고 있는 ‘새집(birdhouse)’들이 단박 눈에 띈다. 앞뜰과 뒤뜰을 장식하고 있는 크고 작은 새집들이 자그마치 250개 남짓. 더욱 신기한 건 그 많은 새집들의 모습이 무엇 하나 똑같은 게 없다는 사실이다. 예부터 새들이 찾아오는 곳은 명당자리라 하지 않았던가. 꽃들이 알록달록 피어있는 정원도 정원이지만 곳곳에 숨어있는 새집들이 포근하고 정감 있는 따뜻한 느낌을 더했다.
“도심 한가운데 작은 숲을 만들었는데 새들이 찾아오는 건 당연한 게 아니냐”고 되묻는 오씨는 “새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먹이 집을 짓기 시작했는데, 그 동안 친구들에게 하나씩 나눠준 것까지 합하면 지금까지 만든 새집이 500개도 넘을 것”이라고 말한다.

오씨의 새집 만들기는 그저 소일거리로, 취미로 하는 수준이 아니다. 꽃과 나무를 사러 화원에 갔다가 마음에 드는 새집을 발견하면 즉시 사진으로 찍어두었다가 틈이 나면 그대로 만들어 본다. 건축일을 하다보니 새집 만들기 정도는 식은 죽 먹기라는 오씨는 나름대로 건축디자인이란 걸 적용하다보니 그래도 손이 제법 가는 편이라고 밝힌다. 그러고 보니, 정원 곳곳에 놓인 나무 수레며, 조각배 모양으로 만든 시멘트 화분, 물레방아며 풍차 모두 오씨의 작품.
“미국인들에게 새집 만들기는 취미 생활로 정착된 지 오래됐어요. 새집 관련 잡지도 여러 가지 나와있죠. 또, 정원이 아름다운 주택을 찾아가 보면 아이들과 함께 만든 듯 엉성하게 지어진 새집들도 눈에 많이 띕니다”
지붕 위에 단단해 보이게 지어놓은 녹색의 새집들을 자세히 보니, 오씨가 예쁘게 지어놓은 집 옆에 다시 새들이 스스로 집을 지어 그들만의 둥지로 찜한 집들이 보인다. 오씨의 집으로 날아드는 새들은 살림집 따로, 먹이집 따로 이중생활을 하는 것 같다.
그래도 한 1년쯤 지나 새집의 페인트 냄새가 빠지고 새들이 보기에도 안전하다고 생각되면 가끔 오씨가 지어준 집안으로 들어가 살기도 한다고. 처음에는 마당으로 찾아드는 새들을 위해 새집 만들기에 관심을 갖게 됐지만, 이젠 새들을 유인해보려고 새들이 좋아하는 꽃 세이지를 심는다는 오씨는 “새들은 자기가 지은 집에만 들어가서 살죠. 사람이 지어준 집에서 사는 경우는 드물어요. 그래서 우리 집에는 지붕만 있고 사방에서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든 먹이집이 많다”고 말한다.
새들이 찾아오면 가끔 뜻하지 않게 새들이 주는 선물을 받게 된다는 오씨. 마당에 떨어지는 새의 똥을 말하는데, 똥 속에 가끔 소화하지 못한 씨가 있어서 예쁜 싹이 움틀 수가 있다는 것이다. 새가 좋아하는 나무를 심은 화분을 마당이나 테라스에 놓거나, 먹이 그릇 옆에 흙을 담은 화분 받침을 놓아두면 새가 선물한 씨에서 나온 싹이 하루하루 자라는 것을 보면서 즐길 수도 있는 반가운 선물이다.
마지막으로 ‘미니이처 티 가든’. 오래된 고목 옆에 빈터를 이용해 오씨가 직접 지은 통나무집 ‘티 하우스’(tea house)는 오씨의 정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다.
비오는 날 지붕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향긋한 차 한잔을 마실 수 있는 이 곳에는 미석씨가 수집해온 각종 티 세트가 오밀조밀 진열돼있고, 통나무로 만든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빨간 고양이 흔들의자가 있다. 예쁜 인형들로 꾸며져 오씨 부부의 집을 찾는 꼬마손님들이 가장 반기는 오두막집이다.
“2년 전에 가든그로브시의 추천으로 가든 투어를 한 적이 있어요. 그 이후로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죠. 물론 친구들은 우리 마당에 피어있는 희귀한 꽃이나 나무를 발견하면, 새끼치기를 해달라고 해요. 꽃 욕심 많은 사람들이 슬쩍 하나씩 집어가도 모른 척 하죠”
꽃을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이 없다는 말에 100%공감한다는 오씨 부부는 “정원 가꾸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방문은 언제라도 환영한다”고 밝혔다. 전화 (714)534-0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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