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르띤의 스페인어 회화와 중남미 문화 산책 ¡Hola! amigo

2005-06-1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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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권 중남미 독립과 아메리카 제국

제323회. 아메리카제국 45. 걸프전쟁
아메리카제국이 42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마지막 편으로 미군이 걸프전에서 대승한 작전인 ‘사막의 폭풍 작전’을 조명해 보자.
1990년 8월2일 이라크는 전격적으로 쿠웨이트를 침공하여 합병하고 19번째 주로 선언하였다. 미국은 즉각 다국적군을 편성하여 이라크의 응징에 나섰으며, 양국이 충돌하여 걸프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당시 이라크는 50만의 대군을 가진 군사 강국으로, 이에 대하여 미국은 월남전에서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신속하고도 희생자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작전을 세우게 되며, 바로 그 작전명이 ‘사막의 폭풍 작전’이다. 이 작전의 주안점은 미공군에 의한 대량 폭격이었다. 수많은 전쟁을 통하여 점점 발달된 무기 체제는 새롭고 강력한 포탄의 개발과 또한 인공위성의 사진 판독으로 폭격의 정확성과 파괴력을 가공하게 만들었으며, 단지 미공군의 폭격으로만 이라크군 전력의 50%를 잠재울 수 있었다. 하루에 수천 회씩의 폭격을 통하여 이라크의 미사일 기지, 레이더 기지, 지휘 통제소, 통신시설, 비행장 활주로, 격납고, 발전소, 교량 등이 모조리 박살났으며, 폭격의 정확성으로 전사상 유래 없는 성공을 거둔 작전이었다.

거의 6개월간 엄청난 포탄을 퍼부은 후인 1991년 2월24일 미 중부군 사령관 슈워츠코프 대장의 지상공격 명령이 떨어졌다. 쿠웨이트에 40만의 병력을 배치한 후세인은 사우디 국경을 따라 벙커와 흙벽을 쌓았으며, 최전방에 50만개의 지뢰를 매설하고 그 후방에는 기름호를 파놓아 다국적군이 접근하면 원격조정을 통해 불바다를 만들만큼 철저히 대비하였다. 이처럼 후세인이 전방 방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을 때, 슈워츠코프 사령관은 미군을 서쪽 사막지역으로 우회시켜 후세인이 전혀 예상치 못하던 곳에서 공격을 시작하였다. 서쪽 사막으로부터의 기갑부대와 공수부대에 의한 기습공격은 순식간에 이라크군의 보급선과 퇴로를 끊었다. 포위된 이라크군은 바로 붕괴하기 시작하였다.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이라크군은 별 저항도 못해보고 속속 항복하였다.
공격 3일만인 2월27일 쿠웨이트가 해방되었다.
이 전쟁은 규모에 비해 전쟁사상 가장 적은 인명 피해를 입고 거둔 승리였다. 이라크군의 전사자는 40만 명인데 반해 다국적군의 전사자는 단지 225명에 불과하였다. 명장 슈워츠코프는 고대 알렉산더 대왕이 즐겨 쓰던 전법을 답습하여 대승을 거두었으나, 미 정부의 우유부단한 결정으로 후세인을 제거치 않아 큰 후환을 남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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