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숙희 기자의 주방일기

2005-06-1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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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 남자애들

내 주위에는 30대 초·중·후반에 걸친 싱글여성들이 많다. 가깝게는 언니의 딸들인 두 조카로부터, 신문사 후배들도 있고, 가끔 어울리는 친구들 중에도 30대 노처녀들이 꽤 많은 편이다.
내가 처녀 때만 해도 여자가 서른을 넘기면 큰일나는 줄 알았었다. 주위의 채근과 재촉도 장난이 아니었고,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것을 마치 신제품에서 중고품이 된 것처럼 여기는 사회분위기 때문에 처녀에게 아이 딸린 홀아비 중매가 들어오는 경우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완전히 달라진 것 같다. 서른이 넘었다고 해서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으며, 본인들도 그다지 초조해하지 않고, 결혼이나 아이 낳기는 선택사항이라며 싱글 라이프를 즐기는 여성들도 많다.
그런데 이 여성들이 결혼이 늦는 이유에 대해 한 목소리로 주장하는 불만이 하나 있다. ‘도대체 괜찮은 남자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자란 1.5세와 2세 한국남자들은 ‘하나 같이 비슷비슷하게 매력이 없어서 도무지 끌리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착하기는 되게 착한데 도대체 히마리가 없고 패기도 없어요”
“그냥 잘 자란 재미없는 모범생들이죠. 전문직종에서 좋은 잡 갖고 교회 열심히 다니면서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하는 남자, 사실은 최고 남편감인데 왜 끌리지 않을까요?”
재미있는 것은 2세들도 자라난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하는 의견이다. 미 동부 쪽에서 자란 남자들이 서부에서 자란 남자들보다는 조금 더 터프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차라리 한국에서 온 남자들이 영어를 좀 못하고 문화권이 다르긴 해도 이곳 2세들보다는 ‘남자답다’고들 하였다. 그러니까 한국남자들 중에서 가장 매력없는 부류가 여기 남가주에서 자란 2세들이란 얘기다.
그런데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나는 요즘 우리 아들을 보면서, 또 비슷한 또래의 아들 가진 엄마들과 대화하면서 매우 공감하고 있다.
우리 아들은 무척 착하다. 아직 열네살 밖에 안 됐고 사춘기 초입이라 뭐라 자신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말 잘 듣고, 밥 잘 먹으며, 모범생으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문제는 이 아이가 뭐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으며, 해달라고 떼쓰는 것도 없고, 뭐든 악착같이 좀더 잘 해보려는 의지가 없이 주어진 삶에 순응한다는 것이다. 그저 학교 갔다오면 TV 보고 게임하고 채팅하다가, 맛있는 밥해주면 해피하기 그지없는, 너무나 평범하고 온순하여 사고 칠 일이 전혀 없는 아이라는 점이다.
이것이 좋은 것일까? 물론 사고 칠 일은 없다는 것은 요즘같이 겁나는 세상에 부모 입장에서 너무나 안심되는 일이다. 그러나 이처럼 규격에 맞춘 듯한 온실형 라이프 스타일에서 자란 남자를 여자들은 싫어한다는 것이 문제다.
여자들의 심리란 이상해서 자상하고 로맨틱하며 가정적인 남자를 남편으로 맞고 싶어하면서도, 야성적이면서 강인하고 패기있는 남자에게 우선 끌리는 것이 어찌할 수 없는 본능이다. 그것은 아마 현모양처 스타일의 여자를 아내로 원하면서도 섹시하고 튀는 여성에게 먼저 끌리는 남자들의 심리와 비슷한 것이리라. 그런데 세상이 평등해질수록 여자들은 더 활발해지는 반면 남자들은 왠지 주눅들어가는 것처럼 보이니, 남녀간 본능에 따라 짝짓기 하기란 갈수록 어려워 보인다.
그러면, 우리의 2세 남자애들은 왜 이렇게 ‘얌전한’ 것일까?
주원인은 ‘너무 순탄하고 편안한 삶’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내린 결론이다. 먹고살 걱정이 없는 환경, 뭐든지 다 해주는 부모, 웬만하면 진학이 가능한 교육제도, 비교와 경쟁이 별로 없이 자기 수준에 맞춰 사는 사회분위기… 도전도 없고 역경을 모르는 삶이 강인해야할 남성을 무사안일, 현실안주형 인간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한국만 해도 학창시절부터 경쟁이 살벌하고, 군대생활도 겪어야하며, 잠시라도 유행이나 경쟁에서 뒤처지면 도태되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머리를 굴리며 생존법칙을 터득하게 되는데, 미국은 그럴 필요가 없는 환경이라 한민족 특유의 악착같은 근성이 자연도태되고 있는 것 같다.
2세 남자애들을 좀더 남자답게 만드는 방법, 뭐 없을까? 한국의 남자들이 기를 쓰고 안 가려고 기피하는 대한민국 군대에 우리 애들을 몰아서 보내보면 어떨까? 말도 안 된다고? 하도 답답해서 해본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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