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러시아에서 담아온 사랑

2005-06-1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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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교여행을 통해 그들에게 전해준 사랑보다 우리 마음에 담아온 사랑이 더 클 것이다. 하나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그 사랑의 빚을 어떻게 다 갚을까?

지난주 모스크바로 단기 선교여행을 다녀왔다. 내가 섬기는 교회는 선교사명을 우선으로 하고 있어서 일년 내내 선교 스케줄이 잡혀 있는데 감사하게도 이번에 우리 가족이 어린 두 아이까지 데리고 참여하게 된 것이다.
LA를 출발하여 13시간이 넘는 비행시간 동안 러시아 국적기에는 무뚝뚝하고 사무적인 승무원 서너 명이 배치되어 최소한의 안내만을 맡을 뿐, 서비스라는 개념이 통하지 않아 지루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또한 공항은 물론이고 숙소의 모든 출입문과 복도에는 정복과 사복 차림의 경찰이 지키고 있었으며 출입을 할 때마다 증명서를 요구하고 까다롭게 굴었는데 아직도 체제 변혁이 이루어지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우리 일행의 미션은 바로 그런 체제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기쁨의 메시지, 복음을 전하려는 것이 아니던가! 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은 치과의사라는 달란트를 사용하여 가난한 이웃을 치료하기 원하신다는 것이다.
두 아이들은 이번 여행에서 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제 또래 어린이들을 만나 그들에게 미술, 공작 시간을 펼치기로 했다. 몇 달 전부터 미술 재료를 사 모으고 종이접기 책을 사서 여러 차례 연습을 해보며 준비한 것을 가지고 드디어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다는 기쁜 마음이 앞섰다.
일정 가운데 가장 중요한 행사는 11년 전 모스크바와 레잔 지역에 세운 신학교의 졸업식이었다. 2년마다 졸업식을 하는데 그동안 배출해낸 현지인 졸업생의 숫자가 80명. 이들을 통하여 교회가 개척되고 신학교 지도자가 양성되며 이슬람권인 출신 고향으로 돌아가서 전도자, 목회자로 활동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튿날부터 신학생들과 주변 협력 교회의 목회자들을 치료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었다. 치료 도중에 전기 사정이 좋지 않아 가져간 치과기재 가운데 값비싼 장비 하나가 순식간에 타버리고 말았다. 이 장비가 없으면 안되는데… 안타까운 마음으로 고쳐보려 했지만 LA에 있는 테크니션에게 어렵사리 국제전화를 해서 물어보니 역시 포기를 해야 한다고 한다.
하나님, 기계에 의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제 손을 붙드시고 능력 주셔서 모든 치료가 가능케 역사해 주시옵소서. 간절히 기도하고 치료를 시작했는데 결국 그 장비 없이 모든 치료가 순조로이 이루어졌다. 할렐루야!
이튿날은 선교팀 일행이 고아원을 방문했다. 우리 아이들은 아동보호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준비해간 공작 클래스를 가졌는데 말도 통하지 않는 아이들끼리 날이 저무는 줄도 모르고 재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고아원에는 다섯 살부터 열두 살까지의 아이들이 살고 있었는데 한 방에 10여개의 턱없이 작고 허름한 침대 위에 낡아빠진 인형들이 하나씩 놓여 있었다. 우리는 교회에서 준비한 선물 백을 나누어준 뒤에 함께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방문을 끝내고 나오는데 다섯 살, 사샤라는 이름의 여자아이가 한 여 집사님의 팔을 붙잡더니, ‘마마!’ 하고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이번 선교여행을 통해 그들에게 전해준 사랑보다 우리 마음에 담아온 사랑이 더 클 것이다. 하나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그 사랑의 빚을 어떻게 다 갚을까?

김범수의 선교하는 삶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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