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주말 타운 산책 실내 골프장 한인들

2005-06-1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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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구 날자 짜증이 달아나네

시간 제약없고 큰돈 안드는 건강 도우미
부부·부자 등 가족 이용객 갈수록 늘어

사실 웬만한 선수(?)들은 주말이면 풀밭으로 본격적인 게임을 하러 나간다. 주말 레인지에는 아직 머리를 올리지 못한 초보자들이 레슨을 받거나 연습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필드에 나갈만한 사정이 되지 않은 선수들도 공과 싸우며 행여 녹이 슬까 칼을 연마하기도 한다.
찰스 이(50)씨는 아들 에드워드 이(14)군과 함께 주말은 물론, 주중에도 꾸준히 골프레인지를 찾는 열성파. 일주일에 4-5번 들른다니 횟수로 치자면 어디에도 빠지지 않을 수준이다. 그는 골프 경력 20년 이상의 준 프로지만 아들이 레슨을 받는 요즘, 올 때마다 이를 지켜보며 배우는 게 많아 즐겁다.
10개월째 레슨을 받고 있는 아들은 필드에 한 번 다녀온 후로는 드라이브 휘두르는 솜씨가 일취월장했다. 그의 경험을 되새겨 보더라도 레인지에서 연습만 하다가 필드에 나갔다오면 훨씬 연습에 신이 났었다. 아들이 첫 경험에 마음 설레는 모습을 지켜보는 그의 마음 역시 그와 비슷한 강도로 떨려온다.
이제 틴에이저로 들어선 아들과 도대체 어떤 주제로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하는가가 늘 고민스러웠던 그는 요즘 언제 그런 걱정을 했었나 싶다. 글렌데일에서 골프레인지까지 오가는 차안에서 아들은 준 프로인 아버지에게 쉬지 않고 이것저것 물어온다. 그러다보면 아들의 요즘 관심사와 학업에 대한 이야기도 물처럼 자연스레 나누게 되는 것이다.
브라이언 김(46)씨는 아내 김선영(42)씨와 함께 골프를 친다. 물론 시작은 그가 먼저였다. 골프란 게 시작하다 보면 다른 취미 생활보다 더한 시간과 열정을 요구하는 것이어서 그 역시 아내를 골프 과부로 전락시키는 건 아닌가, 여간 미안스러운 게 아니었다. 이대로 가다간 한 집에 사는 남남이 될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는지 그의 아내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박세리 못지 않은 골프 장비를 갖추더니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요즘 이들 부부는 주중에도 남편 퇴근 후 레인지에서 함께 연습을 하고 주말이면 근교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골프코스에서 잔디를 밟으며 골프를 즐긴다.
오가는 차안에서는 물론이요 가끔씩은 이불 속에서도 골프채 휘두르는 얘기를 하느라 권태기는 강 건너 얘기처럼 멀리 느껴진다고. 이렇듯 부부, 부자 관계는 물론 온 가족이 함께 골프레인지를 찾는 경우가 최근에는 더욱 늘고 있는 추세다.
“골프란 게 한 번 빠지면 깊이 들어가게 되거든요. 이곳 골프레인지의 경우 하루 평균 800-1,000명 정도가 와서 연습을 합니다. 거의 이틀에 한 번씩 정규적으로 오는 분들이 많고요. 한 번 오시면 짧게는 4-50분에서 2-3시간씩 채를 휘두르고 가시죠.” 올해로 경력 25년째에 들어서는 박윤숙 프로(아로마 골프아카데미 대표)의 말이다.
골프는 외로운 유희다. 골프레인지에서 모든 신경을 공 하나에 집중하며 연습에 임할 때 세상엔 오직 나와 골프공만이 존재한다. 각자 핸디가 다를 뿐 몰입하고 집중하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
그렇게 집중을 해도 완전 게임이란 없다. 그래서 골프는 매력적이다. 골프가 좋은 또 다른 이유는 나이가 들어서도 몸에 별다른 부담을 주지 않고 계속 할 수 있는 운동이란 점.
시간이 없어 골프를 배우지 못한다는 것만큼 궁색한 변명은 없다. 대개 골프레인지의 경우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문을 열고 있다.
마음만 있다면 하루 중 어느 때라도 짬을 내 시작할 수가 있는 것. 경제적인 것도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골프레인지 이용료는 비교적 저렴하다. 처음부터 골프채 세트가 다 필요한 것도 아니다. 7번 아이언, 1번 드라이버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으니까.
레인지에는 여성 골퍼들의 모습도 많이 보인다. 골프코스에 선 것보다 더 화사하게 노랑, 분홍 티셔츠와 반바지를 챙겨 입은 모습이 주변을 얼마나 환하게 해주는지 아마도 본인들은 의식하지 못하리라.
어디 여성들뿐일까. “실전 때처럼 골프웨어를 입고 연습에 임하면 마음가짐이 달라져선지 훨씬 볼이 잘 맞는 것 같아요.” 골프레인지에서 만난 마이클 이(35)씨는 하늘색 티셔츠로 얼굴까지 훤해 보인다. 그래, 많은 경우 형식은 내용을 좌우할 수 있다.
“전, 골프를 시작한 지 약 5년 정도 됩니다. 더 이상 시작할 때처럼 레슨을 받지는 않는데요. 필드 나가서 치다 보면 실수를 많이 하거든요. 그 주말에 잘 못 친 것을 집중적으로 연습을 하다 보니 꾸준히 향상되네요.” 김영수(30)씨의 말이다.
신사들의 스포츠, 골프는 안전과 예의가 생명. 이를 위해 매너와 룰을 준수해야 한다. 골프코스가 아니지만 상대에 대한 배려는 아무리 많이 해도 지나치지 않다. 앞 사람이 연습에 집중하고 있는데 요란하게 전화벨 소리가 울리거나 커다란 목소리로 떠드는 것은 에티켓 기준치 미달이다. 서로 공중 예절을 준수할 때 보다 좋은 환경에서 연습할 수 있는 것이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골프레인지에 서서 그립을 쥐어봤다. “어떻게 해야 되죠?” 하는 질문에 박윤숙 프로가 기본자세를 가르쳐준다. “엉덩이를 뒤로 빼고, 등판 각도는 아기를 등에 업었다고 생각하세요. 양손에 그립을 쥐는 힘은 치약 새것을 잡았을 때 또는 애인의 손을 잡고 걸어갈 때 정도로요. 무릎은 15도 정도로 굽히고 턱을 치켜드십시오. 눈으로는 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따라갑니다.” 아이고, 공하나 날리는데 이렇게 여러 곳에 신경을 써야 하다니. 팔과 다리에 쥐가 다 나려고 한다.
초기자세가 평생을 가는 것이 골프. 골프에 갓 입문한 한인들은 올바른 자세와 실력향상을 위해 오늘도 골프레인지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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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여성이 이른 아침 아로마 골프레인지에서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남가주의 골프레인지들

▲아로마 골프레인지(Aroma Golf Range) 3680 Wilshire Bl. Los Angeles, CA 90010. (213) 387-0212.
▲센추리스포츠센터(Century Sports Club) 4120 W. Olympic Bl. Los Angeles, CA 90019. (323) 954-1020
▲라마 골프레인지(Lama Golf Driving Range) 2793 W. Olympic Bl. Los Angeles, CA 90006. (213) 365-9090
▲두펄스 골프레인지(Harbor Greens Golf Practice Ctr.) 12261 Chapman Ave. Garden Grove, CA 92840. (714) 663-8112
▲스탠턴 골프레인지(Stanton Golf Center) 10660 Western Ave. Stanton, CA 90680. (714) 826-6598
▲인랜드 골프레인지(Inland Golf Range) 25838 Barton Rd. Loma Linda, CA 92354. (909) 796-7688
▲123 골프 실내연습장(123 Golf) 2675 Skypark Dr. #201 Torrance, CA 90505. (310) 326-5756
▲하버 골프 종합연습장(Harbor Golf Practice Center) 1700 W. L St. Wilmington, CA, 90744. (310) 835-3000
▲레디 골프 드라이빙 레인지(Ready Golf Driving Range) 16821 Burbank Blvd, Encino, CA 91436. (818) 986-2633
▲존스 웰즈 골프레인지(John Wells Golf Driving Range) 11501 Strathern St. N. Hollywood, CA 91605. (818) 767-1954
▲알함브라 골프레인지(Alhambra Golf Course & Range) 630 S Almansor St, Alhambra, CA 91801. (626) 570-5059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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