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제임스 딘 50주기 미 전국 추모 열기

2005-06-1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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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영원한 24세’

청춘의 반항과 고독에 체온이 있다면 그것의 온도는 추위일 것이다. 모든 10대의 소외감과 몰이해 그리고 고뇌와 혼란을 혼자 대속하는 듯했던 제임스 딘은 늘 추워 보였다. 그는 이 추위 탓인지 어깨를 잔뜩 움츠린 자세로 연기했었다.
1955년 9월30일 초저녁. 은빛 550 포쉐 스파이더를 과속으로 몰며 캘리포니아 고속도로를 달리다 중가주 파소 로블레스에서 다른 차를 들이받고 즉사하는 순간 시간 속에 얼어붙은 지미 딘은 속도광이었다. 이 날도 샐리나스에서 열리는 차경주 시합에 참가하기 위해 차를 몰던 중이었다. 달랑 3편의 영화만 남기고 세상을 떠난 나이 24세. 살았더라면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동갑이다.
빨리 살다 빨리 간 딘은 자신의 순수와 신선함이 채 타락되기 전 미완성으로 죽어 더욱 낭만적이다. 늘 속을 끙끙 앓는 듯하던 아름다운 딘은 죽는 순간 전설이 되면서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신화 속의 젊은 반인반신 영웅과도 같은 존재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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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딘의 고향 페어마운트에 있는 딘의 묘비에 여성 팬들의 립스틱 자국과 피다 만 담배가 놓여 있다.


유작 상영·DVD출시·기념품 판매 등 각종 추모행사 쏟아져

절망의 10대 연기로 분출

순수·신선함이 타락하기전
미완의 죽음, 사후에도 숭배

제임스바이론 딘의 사망 반세기를 맞아 전 미국은 지금 그를 추모하는 각종 행사로 분주하다.
연중 계속해 딘 기념행사가 열리며 그의 영화들이 재상영되고(위크엔드판 새 영화참조) 또 전기가 출판되는가 하면 TV는 딘의 특집을 방영한다.
일본의 도쿄와 오사카에서는 딘의 영화 ‘에덴의 동쪽’과 ‘이유 없는 반항’이 연극으로 공연됐고 지난 달 칸 영화제에서는 딘에 관한 최신 기록영화 ‘제임스 딘: 포에버 영’(James Dean: Forever Young)이 선보였다.
그리고 딘의 영화를 만든 WB는 최근 그의 작품 ‘에덴의 동쪽‘(East of Eden)과 ‘이유 없는 반항’(Rebel without a Cause) 및 ‘자이언트’(Giant)를 모아 박스세트로 출시했다.
세트는 70달러 개당으로는 27달러. LA에 사는 사람들은 3가와 페어팩스에 있는 그로브 샤핑센터에 마련된 제임스 딘 키오스크에서 각종 기념품을 살 수 있다.
한편 딘의 고향인 인디애나의 페어마운트에서는 지난 3~5일 제임스 딘 축제가 열렸다. 이 행사에는 미국과 전세계에서 10만명의 팬들이 찾아와 영원한 국외자를 추모했다.
딘은 1931년 2월8일 인디애나 매리온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부모와 함께 5세 때 LA로 이사했으나 딘이 9세 때 어머니가 사망하자 아버지는 아들을 페어마운트의 삼촌 집으로 보냈다.
딘의 성격 형성은 자기를 극진히 사랑하던 어머니의 갑작스런 사망과 아버지로부터의 버림받음에 크게 좌우되었다는 것이 딘의 주변 사람들의 얘기. 생전 아버지의 사랑을 간절히 구했던 딘의 아픔은 그의 데뷔작인 ‘에덴의 동쪽’(1955)에서 엄격하기 만한 아버지의 사랑을 몸부림치며 요구하던 칼에 의해 재현된다.
딘은 고향서 고교를 마친 뒤 LA로 다시 와 엑스트라와 TV 광고배우 노릇을 하다 연기공부를 하려고 뉴욕으로 갔다. 그는 말론 브랜도와 몽고메리 클리프트 및 폴 뉴만 등이 공부한 액터스 스튜디오에서 수업을 했는데 연극과 TV쇼에서 실력을 연마했다. 특히 딘의 40편에 가까운 TV쇼는 그의 초창기 모습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액터스 스튜디오 운영자 중 한 사람인 벨리아 카잔이 딘을 자기 영화인 ‘에덴의 동쪽’에 주연으로 발탁했는데 그는 이 연기로 사후 오스카 주연상 부호에 올랐었다.
딘은 연기에 살고 연기에 죽는 식으로 극중 역을 몸소 살았는데 연기에 대해 “그것은 사람들이 자기 신경증세를 표현하는 가장 논리적인 수단”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1950년대는 풍요의 시대로 10대들의 부모들은 자신들이 못 누린 혜택을 자식들에게 버리다시피 제공했었다. 자신들에 대한 진실한 이해 없는 부모들의 선심에 대해 10대들은 반항으로 보답했는데 이런 10대의 모습과 속사정을 잘 묘사한 것이 ‘이유 없는 반항’(1955)이다.
지금도 10대의 바이블로 남아 있는 영화에서 빨간 재킷을 입은 딘은 자기의 내면에 대해 무지한 부모들을 쳐다보며 “당신들이 나를 갈기갈기 찢어 놓고 있어요”라며 울부짖는다. 모든 10대의 절망감을 대변하는 절규였다. 이 영화는 딘이 죽은 지 4주 후에 개봉했다.
딘의 마지막 영화는 록 허드슨과 리즈 테일러와 공연한 ‘자이언트’(1956). 딘은 허드슨이 주인인 텍사스의 거대한 목장의 잡역부로 나온다. 딘의 골수 팬들은 딘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 영화를 폄하하는데 나는 여기서의 딘의 연기를 가장 좋아한다.
딘이 짝사랑하는 여인이 허드슨의 타는 듯이 고운 아내 테일러. 딘은 석유재벌이 된 뒤에도 혼자 살며 테일러를 사모하는데 그가 잡역부 시절 혼자 연모하는 테일러를 깊이 내려 쓴 카우보이 모자 속에서 도둑고양이처럼 훔쳐보며 탐내는 모습이 가슴 아프게 고독해 보인다.
딘에게 연기를 가르친 프랭크 코사로는 “그의 재능은 본능적인 것으로 테크닉은 제로”라고 말했다. 배우 마틴 쉰의 말처럼 딘의 연기는 연기가 아니고 깊은 개인적 행동이었을 뿐이다. 수줍어하는 듯한 미소 속에 우리를 막 뛰쳐나온 야성을 지녔던 제임스 딘은 죽지 않았다. 그는 지금 24세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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