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띤의 스페인어 회화와 중남미 문화 산책 ¡Hola! amigo
2005-06-08 (수) 12:00:00
제2권 중남미 독립과 아메리카 제국
제316회. 아메리카제국 41. 한국전쟁 3
중공의 개입 위협에도 자만감에 빠져 그들의 경고를 무시했던 미군이 중공군과 조우한 곳은 청천강이었다. 미군은 이미 중공군이 10일 전에 한만국경을 넘었는데도 전혀 모르고 있을 만큼 정보체제가 엉성했었다. 처음 조우한 후 자취를 감춘 중공군을 겁먹고 도주했다고 생각한 유엔군은 국경선을 향하여 내리 진격했으나, 묘향산 지역에 숨어 있던 약 50만의 중공군으로부터 기습을 받고 그대로 무너지고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구식 소총과 수류탄 등 엉성한 무장에, 꽹과리를 치고 나팔을 불어대며 인해전술로 나온 중공군에게 국군 3개 사단과 미 2사단이 포위를 당해 거의 박살이 났으며, 물밀듯 내려오는 중공군에 겁먹고 유엔군은 무조건 후퇴하기 시작하였다.
1951년 1월 서울을 포기하고 계속 후퇴하던 유엔군은 평택까지 후퇴한 후에야 겨우 전열을 가다듬을 수 있었으며 한참 후에야 38선 이남의 영토를 다시 회복하였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끝을 모르던 맥아더의 오만은 묘향산, 청천강 전투의 패배로 치명상을 입고 말았다. 그는 전세를 되돌리기 위하여 만주 폭격을 완강히 주장했으나 확전을 겁낸 트루먼의 해임 결정으로 전쟁 중 해임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던 것이다.
1953년 7월 한국전쟁은 다시 한번 강대국들의 회의에서 전쟁 전의 국경선을 유지하기로 한 채 휴전으로 끝났으며,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분단은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전쟁의 사망자는 군민 합쳐 300만명이나 되었으며, 원래 산업시설도 별로 없었던 땅을 허허벌판으로 만들었다. 물론 우리가 이조 때라고 잘 산 것은 아니었으나, 전후 우리는 1970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가 되었다. 길가에는 구걸하는 거지들과 상이군인들이 넘쳐 났으며, 집집마다 먹을 것이 없어 굶기를 밥먹듯 했다. 그나마 한국인들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원조였다. 2차 대전 중 유럽 제국으로부터 많은 이권을 물려받았고, 또 막대한 군수물자를 판매하여 경제적으로도 막강한 국가가 된 미국이 최빈국 한국에 구호물자를 원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굳어서 버리기 직전인 우유도 있었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강냉이도 있었으나 그들의 원조가 없었다면 훨씬 더 많은 아사자를 양산했을 것이다. 희망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전국민 모두 패배주의에 젖어 있었으며, 1965년까지도 연간 국민소득이 100달러였던 나라가 단 30년만인 1995년에 100배인 1만달러의 소득을 가진 국민이 되었다. 참으로 이상한 국민이고, 유일하게 쿠데타로 번영한 이상한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