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음 들여다보기

2005-06-0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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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과 용서의 심리학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명쾌한 사고의 법학생으로서 재정 러시아 당시의 민중들의 가난과 고통을 함께 괴로워하며 사회정의에 대한 이상과 현실의 어그러짐에 고뇌하는 젊은 지성이었다. 그러한 중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정하게 이득을 챙기는 전당포 노파의 생명이 사회의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악이 되기 때문에 그를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논리를 가지고 도끼로 노파를 살해하게 된다. 그러나 노파를 살해하는 와중에 살해장면을 목격하게 된 노파의 여동생까지 본의 아니게 함께 죽이게 된다.
정당한 논리로 살인을 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죄책감으로 고통받으리라 생각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이 밀려오는 극심한 죄책감은 그를 거의 미치게 하는 지경에 이르게 했다. 결국 그는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고백을 거리에서 몸을 팔아 가족을 부양하는 쏘냐에게 하게 된다. 그리고 쏘냐의 권유를 받아들여 경찰에 자수하고 시베리아 강제수용소로 보내지며 후에 쏘냐가 그를 따라 시베리아 수용소로 와 죄수들을 돌보며 그의 곁에 있게 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종교적인 존재이다. 인간 심리와 종교가 만나는 곳이 바로 죄책감이다. 그래서 잘못을 저지르면 그에 대해 고백을 하고, 용서받고 싶은 강한 심리적 필요를 느끼게 되는데 이것은 보편적인 인간심리이다. 만약 잘못에 대한 고백이 없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온전성이나 정직성에 상처를 입게 되어 도덕적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고백은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잘못을 저지른 후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하여 잘못을 부인하거나 정당화시키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책임전가를 하는 등 여러 가지 심리적 방어기제 사용하는 무의식적인 노력을 하게 된다.
분석 심리학을 주창한 칼 융은 고백과 용서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효과에 대하여 강한 이론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고백은 인간을 심리적 긴장과 억압에서 자유로워지게 하고, 도덕적 소외감 또는 죄책감으로부터 해방시킨다. 또한 융은 고백을 들어주는 존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고백을 들어주는 존재와 그 존재와의 관계야말로 고백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치명적인 요소라고 한다. 들어주고, 받아주고, 용서해주는 존재가 있으면, 고백하는 사람은 더 이상 외톨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죄책감에 불가항력적인 존재이다. 혹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합리화시키고, 정당화하고, 부인을 해도 잘못을 고백하지 않으면 병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방어벽을 내리고 서로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고 용서하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


서경화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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