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럴 땐 어찌해야 하는가

2005-05-29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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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30분 소등이라는 소리와 함께 선교회 아이들은 잠자리에 들 준비로 분주해진다.
화장실도 줄서서 가야하고, 아까 6시 즈음 먹은 저녁식사가 부실했던 것도 아닌데, 간식 생각이 간절해진다. 그러나 고픈 배와는 상관없이 간사님들의 빨리 자리에 누우라는 등살에 어쩔 수 없이 침대에 들어간다.
잠시 후 조용하다. 선교회에 그 소란스럽던 낮 시간과는 달리 유난히 깊은 정적이 흐른다. 간간이 뒷마당에 똘똘이 녀석 목청소리와 함께 김 목사님이 토종닭이라고 얻어온 수탉 한 마리가 주책 맞게 낮과 밤을 구분 못하고 열심히 울고 있다. 대충 자리에 아이들이 든 것을 확인하고, 간사님들도 자리에 들어 단잠에 빠져들은 시간이다.
그때 즈음 사무실에서 나와 선교회를 한 바퀴 돌아본다. 어쩌다 몰래 잠자리에서 빠져 나와 낮에 숨겨두었던, 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녀석도 있고, 맥주 한 깡통을 어디에다 숨겨 놓았었는지, 숨겼다가 후닥닥 마시고 들어가려다 들키는 녀석들도 있다. 아무리 단속을 한다고 해도 간간이 술, 담배, 이런 골칫거리는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선교회에 들어온다고 갑자기 모범생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녀석이 유독 문제를 일으켰다. 몰래 선교회 담을 넘어서 도망가기도 하고, 빠져나가 술을 잔뜩 먹고 들어오기도 하며, 치고 박고 싸우고, 한마디로 문제 덩어리였고, 걸어다니는 사고뭉치였다. 이 녀석 때문에 다른 아이들까지 영향을 받아서 덩달아 난리들을 쳐대는 것이었다. 뭐라고 할라치면, 누구는 봐주고, 누구는 안 봐주나… 하며 공평하지 못하다는 것 때문에 이 녀석을 쫓아내야만 하는 상황에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녀석이 너무나 안쓰럽고, 불쌍하였다. 쪼들리는 형편 때문에 녀석의 부모는 허구헛날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고 술이라도 아버지가 먹고 들어오는 날이면 들어오면서 온통 집을 죄다 부수어 대고, 집어던지고, 마누라며, 자식들에게 주먹질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도 모자랐는지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아버지가 없는 돈에 도박에 손을 댔다가 간신히 먹고사는 일까지 막막해졌다. 누구에게도 집안사정을 얘기하지 않고 쉬쉬하며, 하루하루 죽지 못해 살았다고 하는데, 이 때문이었는지, 녀석 어릴 때부터 무조건 빗나가고 부모가 하라면 더더욱 어깃장을 놓고는 했다고 한다.
결국 부모는 갈라서게 되었고, 부모 중 어느 한쪽도 녀석과 동생들을 맡아 키울 능력이 전혀 없었다. 녀석은 지금 당장 선교회에서 내쫓기면 의지할 아무 곳이 없었다. 하룻밤 갈 곳도 없었다.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고, 할 줄 아는 일도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나눔에서 생활하는 것이 그나마 녀석에게는 가장 큰 안식처였다. 그 이외에는 아무런 희망도 없었다. 무엇인가, 할 수 있다고 심어주어도 그때뿐이었고, 다시 자신은 쓸모 없는 아이라는 그늘이 녀석을 짓누르고 있어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녀석이 또 사고를 친 것이다. 선교회는 단체생활이고, 규칙이 있다. 물론 문제 있는 이들이 모여 있지만, 그 문제 나쁜 습관 때문에 들어왔는데, 그러한 일을 지속적으로 할 때 이를 묵인하고 넘어갈 수 없기에 그에 해당하는 벌칙을 받거나, 심할 경우 퇴소를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이들에게 지나친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럴 때 가장 고통스럽다. 한 생명을 끝까지 지키고, 인도하자니 더 많은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고, 전체적인 규율이 무너지게 되며, 그렇다고 더 많은 이들을 위한다고, 천하보다도 귀한 생명을 내몰아야 하는가? 조금만… 딱 한번만 더… 이렇게 얼마나 더 넘어가야 하는가?
다른 이들은 이러한 나를 보고 결단하지 못하며 우유부단하고, 맺고 끊지 못한다고 수군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수군거림을 듣고라도 그 한 아이를 인도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과연 이럴 땐 어찌해야 하는가!

한영호
<나눔선교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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